처음보다 더 나아지는 은혜
처음보다 나아지는 은혜
사람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육체적으로 연약해지고 도전의식이 줄어들기도 한다.
예전에 레프팅을 방문 팀들과 자주 했다. 그 때 어떤 목사님이 자신은 이런거 잘못하겠다고 하면서, 혹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그 목사님의 나이쯤 되어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알거 같다.
인생의 길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많은 사고를 만나고, 불의의 사고로 많은 이들을 떠나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게 되는 것이다.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보다 걱정이 먼저 앞선다. 우선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나이보다 신체 나이가 몇 살 더 어리다.라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결국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20대 30대의 팔팔하던 때의 몸이 이미 아니다.
우리의 영도 육체의 지배를 아예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마음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영도 침체가 된다.
예수를 처음 만난(그것이 모태던 아니던 대부분 청소년 시절이나 청년시절에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날 것이다.) 그 때의 열정이 계속 유지되기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물론 노하우는 생기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들은 무시할 것이 못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불이라는 것이 촛불정도일 때는 바람이 불면 꺼질까 걱정이 되지만, 모닥불을 넘어 산불이 되어 버리면 바람이 불수록 그 불길은 더 거세어진다.
장작불은 꺼는 쉬운 방법은 장작을 흩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 불길이 살아있다가 제풀에 꺼져 버린다.
그래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여튼,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지난 몇 년동안 지진 후에 정신적인 충격과 이어지는 많은 사역으로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래서 지난 일 이년 동안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셨던 “네 첫 사랑을 찾아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살았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뜨거운 감격,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를 갔던 때, 일주일에 2번 3번 철야를 했던 때, 선교사로 헌신하고 네팔에서 수 많은 장소를 위험을 무릅쓰고 다녔던 일들.
그 첫 사랑을 찾을 수 있다면.
지금도 오지를 다니려고 노력하고, 여전히 현지교회에서 감동의 예배를 마주하고, 현재 하는 사역에 기쁨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때로는 지쳐 있는 나를 발견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지고, 새로운 도전이 즐겁지만 또한 버겁다.
그래서 처음의 열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요즘 나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 사건의 간단한 한 문장 때문이다.
물이 변하여 가져온 포도주가 처음 것보다 나았다는 것이다.
보통 결혼식 끝쯤 되면 포도주의 질이 떨어진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미 술을 마셔서 술 맛도 잘 느끼지 못할 때쯤 되었고, 중요한 귀빈은 다 돌아가서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식 마지막쯤 나오는 포도주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별로 흠이 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어쩌면 그런 세상의 이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처음처럼만 되어도 참 좋겠다. 그래서 변해가는 성도들에게 처음처럼만이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 같다.
결혼한 신혼 부부가 처음 결혼할 때만큼만 사랑하면 뭔 문제가 있을까?
하지만 예수님의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처음만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보다 더 좋아지는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고집불통이 된다.
꼰대.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 아닌가?
그것이 어쩌면 생각은 있지만 육체가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서 타협하고, 열정도 사라지고, 단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그 경험과 지식도 이미 세월따라 구식이 되어버린)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만 있지는 않은 것인지?
우선 처음처럼.
그리고 더 나아가 처음보다 더 나은.
포도주는 오랜 세월을 두면 더 맛이 깊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공기와 접촉을 줄이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화되어 버리고, 시어지거나 아니면 아예 부패해 버린다.
우리의 믿음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변하고 신 맛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한 것 같다. 하나님이 뜻이 아닌, 세상의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어떤 결론을 내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소견으로 결론을 낼 수도 없다.
단지, 처음처럼 아니 그 너머 더 나아지는 나의 모습을 꿈꾸는 것이 요즘의 소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그 첫번째 기적.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변화의 기적.
그리고 그 변화는 늘 처음보다 더 좋은 변화.
그 변화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변화.
그리고 그 변화는 물을 가져온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
내 삶에 또 다시 그런 기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