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단순한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정말 잘 아는 이야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을 키운다. 특별히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더욱 귀한 존재이다.
우리의 많은 소유물 중에 애완견은 왜 특별해 지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애완견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핸드폰이 고장 나서 버릴 때와 애완견이 죽어서 떠나 보낼 때는 여운이 전혀 다르다.
이 세상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생물, 하나는 생물이다.
이 구분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것의 순서도 이렇다.
1일:빛(낮과 밤)
2일:궁창(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
3일:육지, 육지의 식물, 바다
4일:해, 달, 별
5일:하늘에 사는 동물(조류), 바다에 사는 생물(어류)
6일:육지에 사는 동물, 사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빛이 만들어지고 3일 후에 해와 달과 별의 위치가 잡힌다.
2일에 하늘과 바다가 나누어지고, 5일에 하늘과 바다의 동물들이 창조된다.
그리고 3일에 육지가 만들어지고, 육지의 식물들이 창조된다. 그리고 3일 후에 그것을 먹고 사는 동물들과 최종적으로 인간이 창조된다.
달과 별과 해, 하늘과 바다와 땅 그 모든 것이 규모가 크고 가치가 있어도 천지창조의 순서를 보면, 그 모든 것이 생물들을 위해서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일의 식물의 순서가 조금 쌩뚱 맞기는 하지만(어찌 보면 해와 달과 별보다 먼저 창조되었다는 건 진화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무생물은 생물을 위한 준비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마지막 창조의 마지막 순서인 인간을 위한 준비물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기저귀와 분유와 젖병과 수 많은 물건을 산다. 그것은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물건이다.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큰 잘못 중에 하나가 아이들이 실수로 비싼 그릇이라도 깨면 이런 소리를 한다.
“대체 너는 늘 조심성이 없어. 이게 얼마 짜리인 줄 알아”
이 문장에서 큰 오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정상이다.
그건 그 그릇이 누구를 위해서 산 것이냐이다.
바로 그 아이를 위해서 산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얘야 다치지는 않았어. 괜찮아. 그릇은 다시 사면 되지. 다음부터는 조심 하렴”
언젠가 큰 아들이 실수로 노트북의 액정을 완전히 박살낸 적이 있다. 실수가 아닌 고의 였다면 훈육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실수로 고장을 낸 것이었다.
마음에서는 혼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미 혼내기 전에 혼자 걱정과 불안에 사로 잡혔을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실수 할 수도 있지, 노트북은 고치면 되니깐. 너무 걱정하지마”
30만원정도의 손해를 보았지만, 그 때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항상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려고 하면서 산다.
꼬맹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비틀거리다 비싼 차를 긁는다.
물론 변상을 하여야겠지만, 우리는 “너 임마 이게 얼마인지 알아”라고 말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차보다 그 아이의 몸과 마음을 살펴주어야 하는 것이다.
비싼 신발을 신고,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다니지 못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런 모순에 빠져 사는가?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이 쌀보다 비싸다. 하지만 근본적인 가치는 쌀에 더 있다.
석유가 물보다 비싸다. 하지만 인간에게 물이 더 중요하다.(물도 무생물이지만)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신기한 창조의 섭리이다.
무생물은 자가번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물은 생명이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번식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 숫자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쌀이 금보다 더 쌀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물은 공짜다.(운송비용을 제외하면)
물은 무생물인데 신기하게 자연에서 순환을 하게 하셨다.
그래서 사용하고 사라진 물이 안개와 비와 눈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훨씬 중요하지만 석유보다 훨씬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요즘은 물값이 석유값보다 더 비싸게 되기도 했지만)
나는 선교사라는 사람으로 산다.
왜 일까? 그건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것이 무생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물 중에서도 창조의 끝점 인간.
그리고 아주 특별한.
바로 하나님의 영이 담긴 생물.
이보다 더 완벽하게 인간의 중요함을 알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을 다시 살리고 싶다.
인간은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생물보다 무생물에 더 가치를 두고, 인간보다 다른 사물에 더 가치를 두게 된다.
아주 단순한 이 진리만 마음에 새기고 살아도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