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삿 7장
300.
300하면 떠오른 것은 복근이 멋진 300명의 스파르타군인들의 모습이다.
크세르크세스(성경에서는 아후수에르- 에스더의 남편인 페르시아대왕)와 싸우는 영화 300.
300명 대 100만명, 결국 전투에서는 지지만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이기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300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기드온과 300용사 이야기이다.
그런데 과연 300명은 정말 용사였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참고로 기드온을 하나님은 “”큰 용사여”라고 말씀 하신다.
그런데 성경을 잘 살펴보면, 기드온이 겁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삿6:11에서 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을까? 그것은 포도주 잎사귀에 가려서 뭘 하는지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포도주 틀에 밀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눈치를 보면서 밀타작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계속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자를 본 후에 두려워서 벌벌 떨고, 우상을 깨 부수는 일도 남의 눈치 때문에 밤에 몰래 한다.
그리고는 또 하나님을 시험한다. 양털 시험.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웬만하면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 모습이 기드온의 삶에 가득하다.
32000명에서 10000명 그 후에 300명이 된 후에도 7장 10절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이라고 말씀하신다.
기드온이 이 때까지도 계속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대장과 함께 있는 300인은 그럼 과연 용사였을까?
용사였을 가능성은…
우선 32000명 중에 10000명을 뽑을 때,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고 하신다.
그 때 남은자 중 다시 300이 뽑힐 때, 주위를 둘러 보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물을 먹은 용사였다는 설교와 주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니깐 전체적으로 비록 300명이지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아직도 15000명이 남았을 때도 300명이 따라 나선다.
그래 그들은 용사였던 것이다.
그럼 그들이 겁쟁이였을 가능성은.
7장 2절에서 “이스라엘이 스스로 구원하였다고 자랑하지 못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용사보다는 겁쟁이를 뽑았을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선 기드온이 겁쟁이였다는 상황판단은 선다.
그런데 3만2천에서 1만명으로 줄 때, 그나마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때 더 적은 인원을 찾는 것이 목적인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 중에 아직도 두려움이 남은 이들을 보낼 것인지, 남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인데…
여기서 고민해야 하는 구절이 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라는 단서다.
물론 무릎을 꿇지 않고 주위를 살펴보는 주도 면밀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사에게 “개처럼”이라는 단어를 쓴다? 성경에서는 늘 개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그리고 왜 그들은 개가 핥는 것 같이 물을 먹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못 믿겠다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기드온의 300명이 뽑힌 샘가는 1만명이 동시에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좁은 곳에서 순서를 지키면서 물을 먹는데, 그 때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겁쟁이는 아니었을까?
동료들도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믿을 수 없었던 겁쟁이들.
만약 그들이 용사였으면 숫자는 비록 적었지만, 그 밤에 기드온이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었을까?
1대 450명
그것도 겁쟁이 300명의 조합.
그래서 그들은 감히 이 전쟁을 자신들의 지혜와 용기로 이겼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겁쟁이 대장에 겁쟁이 300명.
수도 없이 하나님이 확인을 시켜 주어야 그때서야 쥐꼬리만한 용기라도 내어보는 그들.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똑 같은 것 같다.
계속 고민해 봅시다.
그들은 과연 인원이 적더라도 1당 100으로 용기를 낸 사람들인지?
우리처럼 비록 겁쟁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