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설교)
한인교회에서 했던 설교을 올려 봅니다.
네팔을 처음 밟았던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에 전했던 설교입니다.
그리고 오지를 다니면서 늘 주님이 주시는 감동입니다.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
본문:
1. 마 13장 28-30절
2. 마 6장 34절
3. 마 7장 17-20절
4. 마 13장 45-46절
안녕하세요!
저는 문을 열고 광야에 나가 진리를 전하는 사람. 문광진선교사입니다.
지금 들려 드리는 대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기장: 활주로가 어디 있나? 못 찾겠는데, 못 찾겠어
부기장에게 다음 착륙신호를 요청하라고 말합니다.
기장: 혼잣말 하듯이 연료가 없어...
17초 침묵 후 서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기장: 활주로에 뭔 문제가 있나? 안 보이는데
이 때 관제탑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라고 한다.
기장: 지금 비상 상태라고 전해!
부기장: 1-0-8로 향하라고! 음 알았다. 재시도하겠다. 아 연료가 떨어지고 있다.
기상의 악화로 선회를 계속 하고 있는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로는 너무 평이합니다.
지금 추락하고 있는데, 그들은 용감하거나 침착한 것이 아니라 상황판단을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기상 악화로 중간 기착지마다 연착을 했던 아비앙카 52편은 케네디 공항 25킬로미터 전에서 추락하고 맙니다.
항공기 사고는 사소한 기술적 잔고장, 나쁜 날씨 그리고 피곤한 조종사의 요소가 결합되면 난다고 합니다.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기체에 이상이 있어도 조종사가 정상적이면 대형사고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PDI(권력간격 지수-Power Distance Index)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이와 계급, 경력 등을 권위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조종사들의 PDI가 높은 순위가 브라질, 한국, 모로코, 멕시코, 필리핀 순인데 항공기 추락사고 발생 빈도도 이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혹시 우리도 나이 때문에, 계급 때문에, 경력 때문에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저는 많은 고민 가운데 이곳에 섰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네팔와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수 많은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으로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사전에서 기적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정의가 되어 집니다.
저는 한국에서 네팔에서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들을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그것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왜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는 사람일까요?
1. 첫 번째, 그것은 교회를 다니는데 구원을 못 받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라 부르는데 바깥 어두운데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지만 천국에서는 만나지 못할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저를 두렵게 하고 슬프게 합니다.
교회의 문턱은 넘어 다니지만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는 늦게 도착해도 문이 열려 있지만 천국의 문은 한번 닫히면 열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방주도 그 문을 닫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곧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고 또한 닫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고, 복음을 듣고 교회를 다니는데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입니다.
가족들이 다 같이 교회를 다녔는데 천국에서는 다 같이 만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가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목숨 같은 자녀들이 있는데 그들을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왜냐면 저의 구원도 그들의 구원도 천국에 도착하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그물에 고기를 잡고 그 중에 쓸모가 없는 것은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추수를 해서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맷돌을 가는데 두 사람 중에 하나는 구원을 받고, 밭을 가는데 두 사람 중에 하나는 구원을 받고, 10처녀 중 다섯은 잔치에 참여를 하지만 나머지 다섯은 참여를 하지 못합니다.
똑같이 간절히 신랑을 기다렸는데, 다 같이 졸기도 했는데 누군가는 구원을 받고 누군가를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주님을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잔치에는 많이 초대를 받았지만 잔칫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고, 잔칫상에 앉아 있어도 거룩한 옷으로 예비하지 않은 자는 밖으로 쫓겨 날 것이라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한번 비침을 받고 타락한 사람은 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주님의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아니 개인적인 종말이 곧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나이 순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되십니까? 어느새 저도 네팔에 온지 15년 인생을 산지 44년이 되었습니다. 인생이 참 빨리 지나갑니다.
이번에 어참에서 목회자 수련회를 하는데 한 목사님의 장인이 지프차에서 떨어져서 사망했습니다. 참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마지막이 그렇게 당황스럽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제자들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전했습니다.
우리가 외쳐야 할 첫 마디도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행복하다. 예수 믿으면 잘 산다.가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안심하고 계십니까?
언제든 교회를 올 수 있어서 오늘도 교회를 왔기에 안심도장 하나 찍으셨습니까?
집사요, 목사요, 선교사이기에 천국이 확정되었나요?
두렵고 떨림으로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마지막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고 두렵고 떨림이 없는 사람은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구원을 받지 못하는 기적을 만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했는데 주님이 “도대체 너를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회개가 사라진, 가슴 찢는 통곡이 사라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세리의 기도가 사라진, 눈물이 사라지는 순간 천국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일까요?
2. 두 번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고도 불행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엄청난 구원의 은혜와 매일 매일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엄청난 모순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여러분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산다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과 기도제목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주님인지 고민을 했고, 엘리야도 사역에 지쳐 죽음을 기다렸고, 노아도 위대한 일을 행한 후 나태해졌으며, 모세도 주위 사람들의 태도에 화를 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마저 십자가의 길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행복을 흔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지고 사는 사람처럼 사는 것일까요?
오늘 아침에도 우거지국을 먹고 왔는지 하루 종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으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미친 짓 같고 고난의 길 같아도 그 길을 걷는 우리는 행복해야 하는데, 예수를 믿기 점점 더 좋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는 우리를 보게 됩니다.
한 번도 한국의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은 살 맛 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잘 사는 시대를 살고, 옛날 왕들이나 먹었을 식단에 왕들의 침소보다 더 좋은 침대에서 뒹굴면서 힘들다가 입에 붙어삽니다. 왕이 타던 수레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불평이 가득합니다.
슈퍼마다 한국과자와 라면이 넘쳐나는데 불평이 가득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라면을 먹으면서 행복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손님들이 라면이라도 들고 오면 동료들과 저녁식사초대를 라면으로 할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교회에 차가 몇 대 없어서 얻어 타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도로에 먼지가 풀풀 날리던 곳을 템포를 타고 다니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혹 스스로에게 주는 궁핍의 시간을 가집니다.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하고, 힘든 교통편과 힘든 숙박시설에서 지내다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참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빼고라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많은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야 하고 감사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대부분 못 살고, 예수를 안 믿는 나라라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놀라우신 예수님을 만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데도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고 행복하지 않은 매일 매일을 보내는 기적의 사람들은 아니십니까?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먹고나 잘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길거리에서 자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터넷이 느리다고 불평하는 여러분, 평생 컴퓨터를 가져보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얼만 전까지 저희는 나라도 없고,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감사를 잃으면 행복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3. 예수를 믿는데 착하지도, 거룩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말을 할 때 착하고 거룩하고 정직하게 말하라고 합니다.
엡5장 9절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예수를 믿는다면 착하고 거룩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생각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데 정치인이 되면 똑같이 거짓을 말하면서 그것이 정치라고 합니다. 장사를 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합니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는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다르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아니 어떨 때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누군가는 “그렇게 너 같이 예수를 믿으면, 나는 예수를 안 믿겠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바리새인들처럼 우리는 천국의 문을 가로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바리새인은 착하고 거룩하고 정직하기나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너무 많은 기독교인이 착하지도 거룩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습니다.
수 많은 현지인 사역자들에게 왜 실망하십니까?
왜 주위의 동료들에게 실망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사역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입니까?
대부분은 그들의 인격에 실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말투, 생각, 행동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세상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짜를 바라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속이고, 예수를 믿는 목적이 더 잘 살기 위한 것인 그들을 보면서 화가 나십니까?
혹시 누군가가 나로 인해 이런 실망감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보면서 실망하고 계시지 않을까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비교해서 조금 나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같은 수준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하십니다.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믿음의 사람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의 수준이 아닌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계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 우리가 전해 듣는 선교사들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주님으로부터 떠나게 하고 있습니까?
누군가가 우리의 삶을 보면서 “저 사람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왜 다를까?”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삶의 복음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똑같이 약속시간을 어기고, 거리에 휴지를 버리고, 차선을 넘나들면서 추월을 하고, 거짓을 행하면서 “네팔에서 살면 다 그렇지 뭐”라고 당연히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올바른 방법이 있는데 편하다고 해서 눈 감고 불법을 행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러 온 사람들입니다.
착하고, 정직하고, 의롭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4. 주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인데 그날을 준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내가 잘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고, 나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하는데 근근히 해 나가고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처럼 기꺼이 일생을 투자하고,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는 일을 만나셨습니까?
주님으로 가슴이 뛰는 일을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고난의 길이라도 그 길을 가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이율이 높은 예금을 찾습니다. 연비가 좋은 차를 구합니다. 투자가치가 있는 집을 삽니다.
그런데 확실한 투자처가 있는 우리는 이리도 투자를 게을리할까요?
그래도 우리는 네팔까지는 왔잖아라고 안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뿌린 것보다 훨씬 많은 결과물을 주님이 주실 것입니다.
므나의 비유에서는 1므나로 10므나를 남기면 주님이 왕으로 오실 때, 10고을을 맡겨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므나는 100데나리온으로 약 600만원입니다.
나는 600만원 투자해서 6000만원을 벌었는데, 그 상급으로 10고을을 상급으로 받습니다. 그것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상급으로 말입니다.
저도 조금 고민을 하면서 국민연금을 넣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국민연금을 넣을 돈이라도 있어서 좋겠다고 말하고, 어떤 분은 국민연금을 못 믿어서 넣지 않습니다.
그래도 긴 노년을 생각하면 국민연금이라도 조금 넣지 않으면 불안할 것 같고, 혹시 홀로 남게 될지 모르는 아내를 위해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으로 성경을 엉터리로 믿고 있는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조금 주님을 위해서 뿌리면 천국에서 엄청나게 거두게 될 것이고, 그것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상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께
“천국에 가면 부끄러움도 없을텐데, 구원받으면 충분한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까짓거 상급 좀 없으면 어때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데 그걸로 충분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로 오지를 다니면서 생각해보니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당연히 수고한 자들에게 갚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급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 확신하는 순간,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 행복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 상상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예수님의 삶,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바울의 삶이 저의 마음을 뛰게 합니다.
죄송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네팔에서 빈대 한번 물려보지 못하셨습니까?
나이트버스로 12시간 이상을 가본 적이 없으십니까?
“정말 죽을 뻔 했어”라고 하는 기억이 하나도 없으십니까?
너무 많은 곳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고, 아무도 찾아가 주지 않는데 망설이고 계십니까?
최대한 가까운 거리와 나의 구미에 맞는 곳을 찾고 계십니까?
현지인들의 집에서 한 번도 자 본적이 없으십니까?
그들에게 오라고만 하고 한 번도 그들의 삶의 장소에 가 본적이 없으십니까?
정말 네팔 땅에 필요한 사역이 뭘까? 보다 뭐가 더 편할까? 나를 후원하는 분들이 어떤 걸 좋아할까? 라고 고민하고 계십니까?
나의 생각에는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후원교회와 목사님들이 생각 때문에 사역의 방향이 결정되고 있으십니까?
어떤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일까? 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먼저 마음이 가십니까?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린 것으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주어질 상급이 결정될 것입니다.
저는 지방을 다니면서 한 가지 자부심은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주님이 나 때문에 단 1초라도 먼저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너무 너무 이 땅에 다시 오고 싶으신데 본인이 약속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면 오겠다는 약속 때문에 오실 수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의 왕으로 모시는데 단 1초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노년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영원을 위해서 투자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도,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 받기 너무 좋은 환경인 네팔에서 그 고난을 피할 방법을 찾지 마시고, 그 고난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면 차를 잠시 세워두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다녀 보십시오.
교회당 밖에 차가 한 두 대 밖에 없던 때가 저는 그립습니다.
떠라이로 가는 나이트버스에 에어컨이 없고, 와이파이가 되지 않던 때가 그립습니다.
공산반군 때문에 지방을 가기가 두렵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렇게 복음에 마음이 열리고, 나라가 열리고, 도로가 열리고, 네팔이 좋아지면 더 많은 이들이 오지를 밟아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방사역자들이 더 줄어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천국이 빨리 오기를 바라십니까?
전도를 하십시오. 아직도 복음이 없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말해 주십시오.
남들이 다 갔던 곳, 지금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가고 있는 곳 말고 멀리 멀리 그들을 찾아가 주십시오.
저는 점점 살기가 좋아져서 더 이상 고생할 것이 없는 네팔이 될까 두렵습니다.
저는 고난 받으러 왔는데 고난거리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고난 받기 위해서 고생하기 위해서 왔는데 더 편한 것을 찾고 있어서 두렵습니다.
점점 장거리 버스 타는 게 힘들고 두렵고 그들과 좁은 좌석에서 시달리는 것이 힘들어져서 두렵습니다.
점점 고추장에 참치캔에 깻잎을 싸들고 다니는 제가 두렵습니다.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선택하고, 기회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싶은 저의 마음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주님의 나라에서 주어질 그 상급을 위해서는 죽음도 아깝지 않아야 하는데 이 땅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죽는 것이 두려운 제가 두렵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적의 사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꽤 괜찮은 쇼핑몰이 들어서고, 길거리에서 먼지가 조금씩 사라지고, 인터넷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카카오톡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네팔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기꺼이 고난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우리는 조금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편한 것을 찾으러 더 좋은 차를 타려고 더 좋은 집에 살려고 더 맛난 것을 먹으려고 더 편하게 사역하려고 네팔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있는 이들은 “선교사님 고생하시죠. 친구야 네팔에서 힘들지”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정말 한 달에 100만원으로 단칸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면서 선교헌금을 해 주는 어떤 이들의 삶을 보면서 미안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정말 힘들게 살고 계십니까? 좋은 집과 좋은 학교와 좋은 차와 좋은 사역지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당히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런 고생까지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으로 뛰어드시기 바랍니다. 그 열매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