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충격
10년 전에 만던 책자에 올렸던 네팔에서 겪게 되는 문화충격을 다룬 내용입니다.
이런 일을 만나도 당황하지 마라.
우리는 보통 문화충격이라는 표현을 한다. 우리와 다른 문화의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럽고 황당하다. 웃기는 일도 있고, 기겁을 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수한 처음 그 시절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이유도 모르면서 시간이 흘러 너무나 자주 봐서 그냥 익숙해져 버린 네팔. 그러다보면 그 첫 사랑도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지?
이글은 외국인으로서 처음 보았을 때 신기했을 장면들을 기록함으로 그 신선함으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의지와 아직도 이런 모습이 낯선 사람들에게 약간의 문화적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들도 포함되기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간접 경험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나도 아직 보지 못한 것도 많고 그 이유를 잘 모르는 것도 많다. 하지만 조그만 바람이라면 다시 네팔에 첫발을 딛던 그 때처럼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네팔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 길거리에 목욕하는 여인을 만날 때.
네팔은 신분차이나 문화적인 이유로 대중목욕탕에 없다. 네팔에서 망하려면 대중목욕탕을 하면 된다. 그리고 혼자서 목욕을 하게 되더라도 옷을 다 벗고 목욕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도 샘을 만났을 때 그리고 마을의 공동우물에서도 목욕을 한다. 옷을 입고한다고 남녀가 같이 목욕을 할 수는 없다. 조금 떨어지거나 서로의 공간을 가리고 목욕을 하는데 보통 남자는 아랫바지를 입고(간혹은 치마 같은 옷), 여자들은 평상시 입는 옷을 그냥 입고한다. 여자들이 목욕하는 모습은 예술이다. 어떻게나 옷을 입고도 목욕을 잘 하는지! 옷도 잘 갈아 입는다. 네팔 여성은 상체는 혹시 보이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젖을 먹이기 위해 상체를 드러낸 아줌마(어떤 땐 10대인 경우도 있다)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하체는 의사에게도 어지간해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 간호사가 대신 진료 아닌 진료를 하게 되는 시골 병원 풍경도 있다.
혹시 길을 가다가 약간 낯 뜨거운 장면이 보여도 네팔에서는 별 것 아니니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 한다.
* 다른 사람보다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산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은 어쩌면 당신의 문제이다. 네팔 장사꾼도 인도에 비하면 순진하지만 어쨌든 장사꾼이다. 그리고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물건들은 우선 비싸게 부른다. 우선 산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부터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네팔 장사꾼의 입장에서 외국인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므로 우선 비싸게 부른다. 그리고 네팔에도 흥정문화이기 때문에 깎을 것을 알고 먼저 가격을 올려서 부른다.
그러므로 물건을 사러 가기 전에.
a. 무슨 물건을 사던 가격대를 알고 사러 가는 것이 좋다.
b. 사전 조사가 되지 않았다면 몇 군데 둘러보아서 가격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c. 동일한 물건을 먼저 산 사람이 있으면 장소와 가격을 알고 가면 좋다.
네팔에서 싸게 사는 방법은 “내 친구가 얼마에 여기에서 샀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동일한 가격에 대부분 살 수 있다.
* 터무니가 없는 택시비가 나왔다.
네팔 택시의 미터기는 조작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님의 눈에는 안 보이는 곳에 조작기가 있는 경우도 있고, 대놓고 속이는 경우도 있다.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만들어지 미터기가 대부분이다. 한국 미터기에 한국 사람이 당해? 속상하다.
4년 전 네팔에 왔을 때보다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바가지를 쓴 것 같다면,
대충 3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a. 이런 나쁜 버릇을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절대 줄 수 없으니 받고 싶으면 경찰서를 가자고 한다. 간혹 경찰서로 가자고 하는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 평소 나오는 금액정도에 조정이 된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먼저 자신의 감정이 안 상할 자신이 있을 때만 사용하라. 네팔인에게 너무 심하게 하고 나면 나중에 후회가 된다.
b. 많이 나온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평소에 얼마 나오니 그 정도만 주겠다고 협상한다.
대부분 궁시렁거리지만 금방 그 돈만 받고 간다. 그런 것 보면 순진하다.
c. 한 마디 말도 하지 말고 평소 나오는 금액정도만 내고 내린다. 이 경우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가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 좁은 길에서 차가 서서 대화를 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트럭이나 버스 기사들은 먼 길을 가다 동료를 만나면 차를 대로변에 멈추고 서로 이야기를 한다. 아주 오랜 시간을 서 있지는 않지만 간혹 길이 막혀도 그냥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네팔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우리도 그런 일을 만나면 좋은 구경거리인가 보다 생각하고 기다리라. 네팔 사람들은 여유가 있기도 하고, 웬만하면 기사를 건드리지 않는다. 네팔 사람들은 기사를 “구루-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네팔에서 아주 인기 있는 직업이다. 버스에서 왕은 손님이 아닌 기사이다.
* 좁은 길에서 차가 서로 만났을 때.
아무리 봐도 차 두 대가 지나가기 힘든데 막무가내 밀고 들어오는 차들이 간혹 있다. 이럴 때는 네팔 사람들이 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손을 비틀면서 “께 거르네.”라고 하면 자신들이 알아서 후진을 한다. 빵빵거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마음을 여유 있게 네팔인 보다 더 네팔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때때론 좋은 것 같다.
* 전화를 건 사람이 “까하 뻐료” “꼬 번누보”라고 물어 올 때.
네팔에서 고쳐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전화예절이다.
우리 같으면 “여보세요. 누구네 집입니까?” 아니면 “저는 누군데 누구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까하 뻐료”라고 묻는다. 즉 “전화가 지금 어디 걸렸냐? 거기 어디냐?”라는 뜻인데 어디라고 말해 주어서 전화가 잘못 걸렸으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끊으면 되는데 “꼬 번누보” 즉 “너 누구냐? 누가 전화 받았냐?”고 물어본다. 전화 한 사람이 누구한테 전화를 했는지 말해야지. 이거야, 원.
이럴 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a. 어디냐고 물으면, 어디 전화 했냐고 되묻는다.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에게 전화했고 그러는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저쪽에서 먼저 자신을 밝히거나 어디 전화했는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네팔 사람들도 답답한 것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다.
b. 어떤 분이 쓰신다는 방법인데, 어디냐고 물으면 “뻐슈뻐띠”라고 말한다.
대부분 금방 끊는다고 한다. 화장터라는데 좋아할 사람 별로 없다.
c. 내가 아는 네팔인이 아닌 것이 확인이 되면 한국말을 하기 시작한다. 알아서 끊는다.
d. 그냥 끊는다. 전화를 걸다 잘못 누른 것이면 다시 전화 오지 않는다.
네팔에서 살면서 외국인에게 전화할 일이 있는 현지인들에게는 최소한 전화예절을 바꾸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장거리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길거리에 세워줄 때.
이것은 화장실을 가라는 것이다. 물론 노상에서 해결해야 한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식사 때에 세워주는 식당에 딸린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참는 수 밖에 없다. 네팔과 인도 여행의 관건은 얼마나 잘 먹고, 얼마나 잘 싸는가이다.
좋은 점이라면 볼일이 급하면 언제든지 세울 수 있다. 기사에게 말만 하면 곧 세워준다.
* 노상방뇨의 현장
길을 가다가 뿐만 아니라 일반 집에도 시골에는 화장실이 없다. 아침이면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을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나는 모습 중에 참으로 당황스러운 모습들이 있다. 네팔의 여인들은 속옷을 안 입는 경우가 있다. 시골 아낙네들은 많이 우리가 생각하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 그래서 이마에 끈으로 연결해서 짐이라도 지고 가다 일을 급하면 그 자리에서 서서 일을 보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남자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을 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는 다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간혹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본다. 아무 곳이라고 해서 길거리에서 하지는 않지만 차가 서면 멀리 가기도 힘들어서 남자들은 버스 앞쪽으로 여자들은 뒤쪽으로 흩어진다.
서서 일보는 여자, 앉아서 일 보는 남자. 아직도 적응 안 되는 풍경이다.
*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나이트 버스를 탔는데 밤에 노상에서 섰다.
이것은 기사가 잠시 잠을 자겠다는 것이다. 간혹 밤에는 통행이 금지되는 지역 앞에서 새벽까지 서 있는 경우가 있다. 대충 언제 출발 할 것인지 확인을 하고 편히 쉬라. 간혹 숙소가 있는 곳에 세울 때는 30에서 100루피에 하루를 지낼 수 있다. 잠시라도 편히 쉬는 것이 좋다. 운행 시간이 20시간이 넘고, 밤에 이렇게 노상에 멈추는 것이 일상적인 노선일 경우 여름에는 차에서 자는 것이 어려우므로 두 가지를 준비하면 좋다.
길거리에 깔고 누워서 잘 야외용 돗자리. 그리고 모기 쫒는 몸에 바르는 약.
몇 번 경험해 보았는데 버스 앞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별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묘미이다.
* 남자들끼리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동성연애자인가? 아니다. 네팔에서는 친하다고 생각되는 남자끼리는 손을 잡고 다닌다. 요즘은 제법 많아졌지만 여전히 부부나 연인끼리도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보기는 힘들다. 우리 부부가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손을 잡고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 하시는 말 “요즘 젊은 것들은 문제라니깐?” 네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여자들끼리는 손을 잡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낯설고 이상하지만 남자들끼리 손을 잡고 가더라도 다른 상상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 일을 시켰는데 시킨 일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알겠지만 네팔 사람들은 “예스”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몰라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외국인이 이야기하면 잘 몰라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엉뚱하게 일을 하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 다시 물을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그리고 여러 명이 모였을 때 말하면 다들 알아들었다고 말하고는 나가서 서로 묻는다.
"저 외국인이 뭐라고 했어“라고. 우리의 발음의 문제와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그들의 습관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네팔인에게 일을 시킬 때는 자세히 그리고 반복해서 알려 주는 것이 좋다.
* 네팔어를 했는데 다시 현지인이 다른 사람에게 네팔어로 말해줄 때.
네팔어를 조금 할 줄 알게 되어 대화를 하는데 평소에 나와 자주 대화한 사람은 잘 알아 듣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잘 못 알아들을 때 현지인이 다시 네팔어로 설명을 한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내가 한 말과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발음이 네팔 사람의 발음과 차이가 있고,(우리가 잘 못하는 발음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비슷하게 들려도 그들에게는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들어서 우리의 발음이나 말하는 습관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을 파악해서 이해를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잘 못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네팔 사람의 경우도 네팔어가 제 2외국어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부족말이 따로 있고, 네팔말은 따로 배운 사람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듣는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평소에 잘 대화하는 네팔 사람들의 말은 잘 들리는데 처음 만나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수는 정말 적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더듬거리며 문법도 발음도 엉망인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현지인들의 인내에 차라리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 조금 가면 된다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때.
특히 산간지역에서 초행길을 갈 때 겪는 일인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네팔 사람의 시간 개념은 분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이다. 우리처럼 쪼개어서 생각하지 않는다. “몇 분 정도 걸리느냐?”라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다.
그들에게 시계가 없다. 그러니 자신들이 항상 걸었던 길도 얼마나 걸리는지 모를밖에.
그들의 걸음은 빠르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우리보다 빨리 걷는다. 그들에게 30분이면 심한 경우 2시간도 걸릴 수 있는 거리이다. 약간 축소해서 말해 준 것까지 고려한다면.
네팔 사람들의 말처럼 “비스따레 자노스. 천천히 가세요.” 그러면 결국 목적지는 나오나니.
* 무슨 행사가 끝날 생각을 안 하냐?
대부분의 아시안 국가들이나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은 시간위주가 아닌 행사 위주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것은 선교사라면 대부분 겪게 되는 일반적인 일이다. 우리나라도 시간을 따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예배시간은 2시간이 기본이고, 결혼식이나 특별한 모임을 가면 순서가 왜 그리 많은지? 결혼식을 4시간 하는 것도 보았다. 이것도 기독교 예식일 때 짧지 힌두교인들은 정말 길게 한다. 그리고 피로연도 밤새도록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거나 놀이패를 불러서 논다. 만약 끝까지 있어야 한다면 마음 푹 놓고,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그리고 다른 약속이 있다면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오면 된다. 그들도 다 이해를 한다. 별로 할 일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는 시시해 보이는 것도 그들에게는 좋은 오락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같은 노래에 단순한 동작을 하는 춤을 밤새도록 추는 일도 흔하다. 그들의 단순함과 순수함에 빠져 보는 것도 좋겠다.
* 길거리에서 소를 만났을 때.
힌두교 나라에 가면 보통 소를 길거리에서 많이 만날 거라고 상상한다. 전 세계에서 소가 제일 많은 나라가 인도이며, 국민 수 대비 소는 네팔이 제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길거리에 소를 많이 만날 수는 없다. 네팔도 꾸준히 도시에 있는 소들을 떠라이 지역으로 옮겨 놓아서 도로에 소들이 예전에 비하면 많지 않다. 하지만 여름이 오는 시절에는 소들이 새끼를 낳아서 여기 저기 소들로 북적거린다. 거기다가 길거리에 얼마나 개들은 많은지.
충격 받지 마시라. 길거리에서 소나 개들이 차에 치여서 죽어 있어도 치우지를 않는다. 그것을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고, 네팔에서도 시체를 만지는 일은 부정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까마귀들이 날아와 다 먹어치울 때까지 치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 한국 물건을 한국보다 더 싸게 사더라고 놀랄 것 없다.
대부분 한국에서 들어온 가전제품들은 약간 더 비싸다. 차는 세금이 너무 비싸서 엄청나게 비싸다. 그리고 한국에서 들어오는 과자들도 한국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약간씩 더 비싸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코리안 샵의 물건도 한국보다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 더 싼 물건들이 간혹 있다. 한국에서 분명 만든 목도리인데 어산 시장에서 80루피(1500원)에 샀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든 모자를 150루피(2500원)에 살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모포가 생각보다 싸게 팔리고 있다. 어떻게 그 물건을 사온 곳보다 더 싸게 팔리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네팔의 물가를 생각하면 간혹은 그것도 비싸다.
* 현지인에게 어떤 일을 시켜도 할 생각을 안 할 때.
우리는 식당주인이라도 청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학교 선생님은 물론 청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힌두사회에서는 이런 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요즘은 많이 변했지만 포터보다 더 비싼 돈을 받고도 안내는 별로 하지도 않는 가이드지만 자신의 짐 외에는 매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다르마라고 하는 힌두교의 세계관과 관계가 있는데 이 다르마는 각자의 계급에 따른 의무를 이야기한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듯이 의무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무가 아닌 것은 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된다.
신분이 평등하고, 어떤 일을 해도 문제가 안 되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당연한 삶의 양식이다.
* 밥 값이 너무 싼 것 아닌가?
네팔인들이 먹는 모모가 10개에 보통 20루피(350원), 먹어도 먹어도 계속 주는 달밧이 30루피(500원)이다. 짜우민이 한 접시에 15루피(280원)이다. 8루피에 반 접시도 준다.
물론 이것은 정말 서민들이 먹는 식당에 갔을 때이다. 트래킹을 가거나 고속도로 변에서 그리고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에서는 먹을 수 없는 가격이다. 우리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20루피 모모와 길거리에서 사 먹는 짜우민, 시골골목길에서 먹는 싸구려 달밧을 좋아한다. 그나마 모모와 짜우민은 마진이 높지만 달밧은 정말 밥 많이 먹는 사람 생각하면 별로 남지 않는다. 이들의 생각은 밥해서 남도 먹도 나도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풍성한 마음이다. 자신들이 먹는 것과 동일한 음식이니 값은 싸지만 맛있다. 푸짐한 식당 주인의 마음이 더 맛있는 네팔음식이다.
* 트래킹을 가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걱정하지 마라. 대부분 우리가 잘 가는 안나푸르나, 랑탕, 에베레스트는 길이 잘 나 있고, 이정표도 그런대로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외길인 경우가 많다. 갈래길에서 길을 헤멘다면 조금 걷다가 만나는 네팔인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준다. 트래킹코스에서는 1시간 거리에 로지들이 있어서 혹시 날이 저문다면 가까운 곳에서 쉬고 다음 날 다시 걸으면 된다.
* 예상하지 못한 물건을 만났을 때
네팔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네팔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밤도 나오고, 캘커타에서 살아서 들어 온 바닷게도 있다. 슈퍼에서도 과자종류가 간혹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나 한국 것도 많이 들어와 있을 때가 있다. 3년 전에 1킬로에 500루피 하던 메론이 올해는 80루피에 사 먹었다. 예상보다 큰 감이 나오기도 한다. 기간이 짧지만 복숭아, 자두도 먹을 수 있다.
이런 물건을 만났다면 ‘나중에 사러 와야지’라고 생각하면 살 수 없다. 그 물건들은 곧 떨어질 것이고, 다시는 안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많이 팔려서 계속 들어오는 물건도 있지만 외국에서 물건을 실어서 보내는 쪽에서 간혹 시험 삼아 보내는 물건들은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도로사정 등에 의해 오랜 동안 안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네팔에서 하는 말 하나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 정작 필요한 물건 사러 가면 어디서 파는지 알아보는 데만도 하루가 지나간다. 정작 그 물건을 파는 곳에 가면 물건이 없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간혹은 “이런 물건도 네팔에”라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물건들은 직접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만들 수도 있다. 네팔에서 “그건 네팔에 없어”라고 말하지 마라. 어딘가에는 그것이 있고,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 대량으로 쇠 컵을 살 때 무게를 단다?
네팔은 어찌 보면 참 합리적으로 장사를 한다. 특별한 정가가 없이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은 다 무게를 달아서 판다. 과일과 야채는 기본이다. 무게 달기가 어중간한 시금치나 파 등은 대충 묶어서 가격을 정하지만 무게만 달 수 있으면 200g(엑 빠운이라고 부름)킬로 단위로 판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드는 굵은 것들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결국 무게로 파니 주인도 눈치 안 준다. 바나나는 더전(12개)에 얼마를 정한다. 고급 주전자, 컵 등은 가격이 정해져 있지만 서민들이 쓰는 것들은 몇 개에 얼마가 아닌 무게에 얼마로 판다. 낱개로 팔기도 하지만 많이 살 때는 무게로 다는 것이 더 유리하다. 무게로 달면 10개에 1~2개는 더 살 수 있다. 그래서 어느 곳에 가던 저울들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 차가 서로 부딪혔는데 잠시 쳐다보다가 가 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언젠가는 카트만두를 벗어나 시골을 가는데 우리가 탄 버스가 앞에 있던 버스를 추월하다가 맞은편에 오는 차 때문에 급히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다른 버스의 백밀러를 박살내고 말았다. 차가 부딪혀도 그냥 가던 모습을 많이 보았지만 이번에는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기사들이 내려서 언성이 높다. 하지만 5분 정도 지나자 잠잠해지더니 진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버스에 있던 백밀러를 떼어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다시 출발. 물론 큰 도시에 가서 다시 다른 것으로 달았다. 아마 낡은 백밀러니 낡은 백밀러로 갈아 준 것 같다.
자세히 보면 네팔에 있는 차들 중에 기스가 나지 않은 차들이 거의 없다. 도로도 좁고, 이래저래 긁힐 일이 많다. 이러니 색도 다시 칠하지 않는다. 느리게 산다는 네팔 사람들도 운전하는 습관은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사고나 나도 큰 소리 안내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 목이 부러지지는 않을는지?
길을 가다보면 우리나라와 다르게 끈을 머리에 연결해서 짐을 드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자들도 풀을 산더미처럼 들고 가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짐꾼이라고 할지라도 도구가 필요 없다. 거리에 앉아 튼튼한 끈 하나 들고 있으면 된다. 물론 트래킹을 갈 때 고용한 짐꾼도 마찬가지다. 밤에 입을 옷 한 벌 달랑 챙기고는 쩌뻘(네팔 샌달- 처음 신으면 정말 불편하다)에 30kg정도하는 짐을 들고 다닌다. 그러고도 우리보다 훨씬 빨리 걷는다. 우리보다 먼저 가서 쉬고 있는 조그마한 체구의 네팔인들을 보면서 경의와 함께 연민의 정이 생긴다. 지게 같은 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물으시는데, 산길같은 곳을 갈 때는 지게조차도 짐이다. 그리고 끈 하나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도 짐을 맬 수 있는데 굳이 지게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불편하다. 산골짝의 촌부(얼굴만 실제 나이는 40대 정도)가 100kg정도씩 메고 가는 것도 보았다. 경의가 절로 생긴다. 힘든 네팔의 삶.
* 고구마 팔러 산속으로...
산속 깊은 곳에는 쌀이 재배되지 않는다. 그래서 옥수수나 감자를 많이 먹는다. 고기도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염소가 전부이다. 하지만 트래킹을 많이 가는 지역에는 외국인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많은 물건들이 들어간다. 그것을 위해 많은 포터들이 짐을 나르는 것을 트래킹 여정 중에 많이 만나게 된다. 콜라가 하루 길이면 2~3배 정도, 3일 길이면 4배정도
5일 길이면 6배정도 비싸져 있다. 콜라 한 병에 70루피를 하는데도 사 먹는 사람이 있으니 그 무거운 콜라를 메고 이동을 한다. 가스통이 이동을 하고, 가장 많이 먹는 고기인 닭이 산채로 이동을 한다. 40마리 정도 되는 닭을, 그것도 살아 있어서 간혹 흔들어 되는 닭을 옮기는 것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때 고구마 팔러 이틀 길을 걸어 들어온 장사꾼을 만났다. 우리는 기쁜 맘에 고구마를 사서 깎아 먹었지만 아무리 팔아도 300루피도 안나오는 고구마를 들고 3, 4일을 걸어 다니는 모습은 참 마음을 아프게 했다.
* 아무리 봐도 50루피.
시장을 가다보면 시금치, 파 등을 갖다 놓고 파는 아줌마, 집에서 딴 과일을 들고 나온 아저씨, 도매상에서 산 자질구레한 물건을 진열하고 파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간혹 당황스러운 것은 가지고 나온 물건을 다 팔아도 이윤이 50루피가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이다. 하루 종일 앉아서 파는 물건이 한국 돈 800원.
네팔 일인당 GNP 200불(24만원) 이것을 하루 하루 계산하면 일인당 하루에 700원을 못 버는 것이다. 그렇다면 4인 가족인 경우 700*4=2800원 기본적으로 2달러 이상은 벌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빈부차를 생각하면 4인 가족이라도 하루에 2달러를 벌기 쉽지 않다.
앞에 네팔이 밥값이 아주 싸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네팔인들의 현실에서는 그것조차 비싸다. 그래서 하루에 두 끼를 먹고, 외식은 거의 없다.
간혹은 길거리에 파 열 단 정도 펴 놓고 파는 사람들이 보이면 약간 시들해도 한 단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를 바래본다.
* 아이를 옆으로 찬 아이
네팔에는 지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포대기라고 하는 것도 보기 쉽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아이를 안을까? 네팔 사람들은 아이를 허리춤에 다리를 벌리게 하고 걸쳐서 안는다. 자신의 엉덩이에 걸리게 하고는 한 손으로 턱하니 받치고 있다. 누나가 동생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관이다. 아이를 안은 것인지, 함께 서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
또한 어릴 때 아이들이 아프지 말라고 귀에도 눈에도 코에도 기름을 넣는다. 물론 기름으로 전신 마사지도 더불어 한다. 그 때문에 귀청이 녹아버린 아이들도 많다. 외국인이 이야기 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그것은 발음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잘 안 들리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차마 부끄러워 잘 물어보지도 못한다.
산골에 가면 또 만나는 진풍경은 어머니인지, 할머니인지 아이를 제주도에 있는 것 같은 바구니에 넣고는 발로 밀고 있다. 그러면서 손으로 뭔가 일을 하고 있다. 부모가 어찌 자녀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아사망률도 높고, 일도 많으니 아이들이 방치된다. 못 살지만 교육률은 높다.
* 왜 서류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적는 것일까?
할아버지의 성함을 아시나요? 나 같은 경우 할아버지의 얼굴을 뵌 적이 없어서 할아버지의 성함을 말해 볼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할아버지의 성함까지 필요할 일이 없다. 그런데 네팔에서는 꼭 할아버지의 성함을 알아야 한다. 은행에서 계좌를 열어도 관공서에 가서 문서를 작성할 때도 꼭 필요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성함을 왜 문서에 기록하게 할까? 네팔의 문화를 알면 간단하다. 그것은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출신성분(?)인지 알기 위한 것이다.
간혹 특별한 경우 성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카스트가 달라서 아들이 아버지와 카스트가 다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까지 적게 되면 대략적인 가정사와 현재의 위치가 파악이 된다. 자신의 이름은 속이거나 바꿀 수 있어도 어디 할아버지의 이름과 성까지 바꿀 수 있겠는가? 카스트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족쇄처럼 따라 다니는 카스트의 무게는 정말 무겁다.
* 터무니없는 수고비를 요구하는 사람들.
네팔 막노동꾼들의 하루 일당이 150루피가 안 된다. 그나마 외국인이 하는 공사장에서나 많이 받지 네팔사람 밑에서 일하면 정말 짜다. 그래도 그런 일이라도 있으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다. 아주 시골학교의 교사가 1000루피(16000원)이 안 되는 것도 많다. 물론 정규과정을 다 못 마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학교교사가 4년 전에 대폭적인 인상이 있었기에 요즘 임금이 약간 높지 그렇지 않으면 막노동꾼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샌들은 5군데가 꿰매고도 15루피밖에 안 한다. 그런데 간혹 황당한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세탁기가 고장 나서 맡겼더니 부품도 갈지 않고 조금 손보고는 다음날 갔더니 8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일은 한 시간도 안 하고 물 몇 바가지 부어서 시험 해 본 것 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2~30분 열심히 닦아주는 오토바이 세차도 40루피밖에 안 한다. 너무 화가 나서 네팔 사람들 일당까지 들먹이면서 싸웠다. 150루피 이상은(솔직히 100루피 주기도 아까웠다) 줄 수 없다고 말하자. 주인이 그럼 들고 갈 수 있으면 들고 가라고 배짱이다. 우리 집이 약간 떨어져 있으니 들고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당장 경운기 빌려서 (경운기 빌리는데 250루피 주었음) 가지고 왔다. 가지고 가는데 중얼거리긴 했지만 잡지 못하는 주인을 보면서 정말 그만큼 경비가 들고, 수고를 했다면 어찌 안 잡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 화가 났다.
간혹은 네팔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면 너무 미안할 때가 있다. 겨우 20루피에 너무 많은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막노동판에서 하루 종일 일하면서 겨우 100루피 들고 가는 아줌마를 떠 올리면 터무니없는 수고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미워진다.
한 가지 충고를 한다면 네팔 사람들에게 너무 과다한 팁을 주지 마시기를... 우리에게는 적은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탐심이 생기게 만들 수 있다. “이거 너무 적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이 되더라도 지갑을 열며 꾹 참으라. 정당한 일에 정당한 대가의 의미를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간혹은 마음을 열고 지갑도 활짝 열 필요가 있지만.
* 길거리에 펼쳐 놓은 볏단들
네팔에서 탈곡기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네팔에서 정미소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추수철이 되면 볏단을 두들기거나 들어서 때리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길거리에 볏단들이 잔뜩 깔린 모습이 보인다. 차들이 다니면서 알곡을 떨어뜨려 주기를 바래서이다. 네팔에도 탈곡기가 있다. 하지만 떠라이처럼 대량으로 농사를 하는 곳이 아니면 별로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네팔의 가정 당 논 면적이 적다. 정미소도 떠라이 지역에는 많이 있다. 그리고 트랙터도 아주 신식으로 많이 있다. 네팔의 대지주는 부자이다. 하지만 어디 영세농들이 돈 주고 벼를 털고, 정미를 하겠는가? 길거리에 늘어놓고, 디딜방아를 밟아 쌀을 찧는다. 시내가 있는 산골에서는 물레방아가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그곳에서 찧을 벼가 별로 없다. 이렇게 길거리에 늘어놓았던 벼들을 쓸어 모으니 나중에 다시 밥을 하기 전에 돌들을 골라내어야 한다. 시골교회를 가서 겪는 가장 큰 고역 중에 하나는 평소에 자신들도 잘 못 먹는 쌀밥을 손님이라도 내어 놓은 그 정성 때문에 밥이 잘 안 넘어가고, 한 숟가락에 한번은 씹히는 돌들로 인해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하얀 쌀밥에 향신료를 듬뿍 넣은 커리와 떠러꺼리들.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자르르 흐르는 고기의 기름기를 쪽쪽 빨아가며 배부르게 먹어 보고픈 그들의 소원이 더 이상 소원이 되지 않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래본다.
* 네팔 사람들은 다들 눈이 좋다?
네팔 와서 안경을 쓴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티벳 사람들은 고원지대에서 살아서 눈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알아보아야 하니깐. 그럼 네팔도 히말라야가 있는 곳이니 눈이 좋은 것인가? 결론을 말하면 네팔사람들은 눈이 좋지 않다. 특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의료캠프 와서 머리가 아프다느니, 눈이 아프다느니 하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학교건물이 어두워서 우리라도 몇 시간 칠판을 쳐다보면 눈이 아플 지경이다. 그리고 집이 어두침침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눈이 나쁘니 기 쓰고 칠판보다 머리까지 아프다.
그럼 왜 안경을 안 쓰나? 당연히 돈이 없어서이다. 안경 하나에 1000루피 정도 하니 일반서민들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이다.
* 잠옷 차림의 아저씨
짜울라켈 거리에서 우리나라 잠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그 옷의 용도를 잘 몰랐던 것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관공서에 들어갔는데 내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상의는 양복에 넥타이를 갖춘 직원을 봤다. 그것도 고위관리였는데 아마 어디서 들어 온 후원물품에서 챙긴 것 같다. 네팔 남자들이 입는 전통 의상의 하의는 내복처럼 딱 달라붙는다. 그러니 아주 자랑스럽게 내복을 입고 출근을 했지.
하지만 간혹은 후원물품을 볼 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네팔 사람의 덩치로는 입기도 힘든 (나도 입을 수 없는 아주 큰) 양복들, 막연히 추울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보낸 스키복, 네팔 여자는 절대 안 입을 미니스커트들을 볼 때마다 정말 돕자고 보낸 것인지 짐 줄이자고 보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네팔도 자존심은 있어서 구제품은 절대 받지 않는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것만 취급한다. 그런 물건이 서류문제 등으로 빌간즈 세관이 그득하다.
* 금방 사라진 돈 지갑
내가 아는 선교사님이 운동을 하러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에 내리막에서 돈지갑이 떨어졌다. 잽싸게 급정거를 했지만 2~30미터 내려와 있었다. 돌아 본 순간, 지갑은 어디에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본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잘못인 줄은 알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외국인 아닌가?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그들도 네팔인이다. 아무리 돈은 다 가져도 좋으니 카드와 신분증은 돌려달라고 해도 아무도 미안해하거나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날 다들 모여서 염소라도 한 마리 잡았을려나.
무슨 일이 생기면 네팔인들만 모여서 쑥떡거리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는 영원히 이방인이다. 이왕 그렇다면 종으로 잘 섬기다가 갈 밖엔.
*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시골길에서 사고가 나서 차를 세웠다. 주위에는 집도 없다. 하지만 순식간에 몰려든 군중에 싸일 것이다. 가던 차도 멈추어 서서 구경을 하고, 지나가던 개도 멈춘다. 불거리가 없는 이들에게 사소한 일도 좋은 구경거리이다. 그 일에 외국인이 포함되었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 트래킹을 가다가 조심할 것이 있다. 꼬마 귀엽다고 사탕 하나 주면 마을 아이들 다 나온다. 사탕 들고 자랑하는 아이를 보고 수 많은 아이들이 모인다. 이들은 친구들에게도 하나 구하라고 말해 준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물건을 아이들에게 주지마라.
* 장애인도 신의 축복? 그런데 장애인을 보기 힘들다.
이상하게 생긴 동물을 이들은 신의 축복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때때로는 신처럼 여겨서 경배를 한다. 그래서 사람도 특이한 특징이 있는 사람들이 경배되기도 한다. 원숭이 얼굴처럼 생긴 사람은 하누만(원숭이 신)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꾸마리처럼 흠 없는 존재가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네팔에서 장애인을 보기는 어렵다. 자신들의 업으로 인해 자녀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를 싫어한다. 아이들 숫자를 물으면 장애인인 아이를 제외하고 말한다. 아무런 교육도 받아 보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네팔의 장애인의 현실이 아쉽다.
* 선생님이 아이의 뺨을 때린다!
길거리에서 아이의 뺨을 때리는 아빠를 본 적이 있다. 우리들이 있는데도 현지인 사역자가 아이들 뺨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학교에서 체벌로 아이의 뺨을 때리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큰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회초리로 때린다면 이들 문화에서는 더 큰일이 난다. 손을 들어서 때리는 것을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네팔 음악은 시끄럽고 빠르다. 그런데 찬양은 느리다.
네팔의 음악이 인도의 영향을 받아서 시끄럽고 굉장히 빠르다. 전통부족 음악도 경쾌하고 춤도 익삭스럽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 이날은, 이날은(아저꼬 딘, 아저꼬 딘)이라는 찬양을 들으면 하품이 난다. 우리가 좀 빨리 부르면 따라 부르지를 못한다. 대부분 원래 곡보다 느리게 부른다.
* 가는 곳 마다 다른 찬양.
네팔은 음악교육이 전무하다. 그래서 악보를 볼 줄 모른다. 그러니 악보가 있는 찬송가는 애초에 필요가 없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할머니들이 똑 같은 곡에 가사만 다르게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배운 곳이 다르고 배운 사람의 음악적 실력에 따라서 교회마다 찬양이 다르다. 그래서 지방에 가서 찬양을 함께 하면 정말 따라 부르기 힘들다. 그나마 요즘은 찬양팀도 있고, 찬양테입도 보급이 되기 시작해서 약간 달라졌지만 예전히 가는 곳마다 찬양이 다르다. 그래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겠지.
* 두 시간 걸어서 학교를 가요.
한국도 아버지 시절에는 걸어서 학교를 많이 다니셨다. 네팔에도 시골에 가면 마을이 작아서 이웃마을과 같이 학교를 운영함으로 멀리서부터 아이들이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학교가 아예 없어서 공부를 배울 수 없는 산골도 많다. 트래킹을 가서 정말 까마득한 계곡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데 가방을 맨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계곡의 반대편에 사는데 걸어서 1시간이 걸려서 학교를 가야한다. 친구 중에는 2시간이 걸려서 오는 친구들도 있단다. 그나마 집에서 학교를 보내주면 좋지, 보통 5학년이상이 되면 인근의 도시로 유학을 가야 한다. 더 이상의 학년이 없기 때문에.
* 지갑에 수북한 1000루피
슈퍼에 가면 우리도 물건을 제법 많이 사는 편이다. 하지만 언젠가 네팔 사람이 물건을 사고 지갑을 여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지갑 안에 1000루피가 30장은 넘게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가정의 한 달 생활비보다도 많은 돈이다. 통장 안에 0이 수도 없이 붙어 있는 네팔 사람의 통장을 보면서 과연 무엇을 해서 그런 돈을 모은 것인지? 지갑에 100루피도 없는 네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는데 참 마음이 아프다.
* 가구들이 길거리에?
네팔도 혼수 문제가 심각하다. 혼수를 잘 해가지 못해서 결국 자살을 하는 여자들도 있다. 사원에서 결혼을 하거나 가정집에서 결혼을 하던 혼수품을 진열해 놓는다. 새 가구가 거리에 놓여 있으면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혼수를 늘어놓은 것이다. 보통 여자들이 시집 갈 때 요즘이 최고 혼수는 오토바이이다. 차는 아니더라도 신랑에게 오토바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사람들도 돈보다는 그릇이라도 하나 사 준다. 그래서 전시해 놓았던 가구와 그릇들을 사 들고 시집을 간다. 이렇게 보여 주기 위해 혼수를 준비하니 얼마나 부담이 될까?
* 30살의 할머니
태양이 너무 뜨거워 금방 얼굴이 검게 된다. 한국으로 일이 있어 들어간 선교사님들 중에 몇 몇 분들은 외국인 노동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마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네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어한다. 그리곤 실제 나이보다 젊게 네팔사람들이 이야기 해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굴을 보면 아이의 할머니인지 어머니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 곧 있으면 척하니 유방을 꺼내 아이를 먹이는 엄마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몇 번째 아이인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 아이를 낳아서 나이가 많은데도 아이 젖을 먹이는 아주머니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50대로 생각되는 그 아주머니도 실제로는 40대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도 있다. 그것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의료캠프를 온 것 같은 아주머니가 실제로는 그 아이의 할머니인 경우이다. 얼굴이 젊어 보인다고요. 천만의 말씀. 그 할머니는 30대이다. 그 할머니는 50대가 되기 전에 증손자를 볼 수도 있다. 15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다 그 자녀도 그렇게 결혼을 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30대까지 결혼도 못한 여자들도 있는데 할머니가 된 여자들도 있다. 나보다도 더 젊은 할머니(?)가 나 보기를 아들 보듯이 한다.
다이, 바이라고 우선 불러 보는 네팔 사람들에게 나이에 맞게 호칭을 받기는 어렵다. 그냥 우리가 먼저 다이, 디디라고 말해 줄 밖에...
* 결국 찾아낸다. 네팔의 정보력은 상상 초월
이민국에 가 본적이 있는가? 보따리 보따리마다 비자신청서류들이 잔뜩 들어 있다. 나름대로 일련번호가 있지만 간혹은 다른 곳에 들어가 있게 되면 그 서류를 찾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결국 찾아낸다. 우리처럼 조회를 하면 범죄 기록이 뜨지는 않지만 관광비자가 아닌 비자를 신청하면 그 전의 자료들까지 다 찾아낸다. 그리고 결격사유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내고 만다. 설마 이 많은 서류를 다 뒤져서 찾을까 생각이 들겠지만 일주일이 걸리던 이주일이 걸리던 결국에 찾아서 서류를 들이민다.
또 네팔의 정보력은 대단하다. 신문에 나지 않았어도 네팔사람에게 물어서 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번다를 하는 것이다. 어떤 경로로 이야기가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소문이 퍼진다. 큰 사건이 나면 거리거리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 곁에서 듣기만 하면 된다. 한국에 있던 선교사들이 네팔에 들어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온다. 어떨 땐 같이 있는 우리보다 먼저 알아서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농담으로 “네팔의 정보력은 CIA보다 빠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에는 어찌 그리 빠른지.
* 토마토를 구워먹고, 오이에 고춧가루 뿌리고, 파인애플에 소금을 뿌린다.
네팔 사람들에게 토마토는 명백한 야채이다. 양파, 고추 등을 제외하고는 네팔은 야채는 거의 요리를 해서 먹는다. 그냥 먹는 것은 상상을 하지 마라. 하지만 요즘은 외국인 때문인지 그냥도 잘 먹는다. 하여튼 토마토도 구워서 먹는다. 먼지 풀풀 날리는 길거리에서 오이를 잘라서 파는데 소금을 뿌려서 먹기도 하고, 간혹 고춧가루가 섞인 소금을 뿌려 먹는데 그 맛도 괜찮다. 미리 잘라 놓아서 먼지가 앉은 것과 그 먼지를 씻어 준다고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는 물에 씻어 주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우리 같으면 완전히 익은 것을 좋아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망고도, 구아바도 파인애플도 약간은 덜 익을 것을 좋아한다. 약간 씹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파인애플이나 파파야도 덜 익은 것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 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금으로 인해 과일은 단 맛이 난다. 한번 그렇게 먹어 보는 것도 재밌다.
* 도돌이표가 왜 그리 많은지!
네팔 찬양 집을 보면 도돌이표가 엄청나게 많다. 왜일까? 그것은 간단한 이유이다. 찬양을 가르쳐 주고, 따라 부르다 보니 결국 그렇게 부르는 것이 원곡인줄 안다. 원곡도 도돌이표를 많이 하지만 곡을 가르치고 배우는 동안에 그렇게 된 것이다.
* 컵에 입을 대지 않고 마신다?
이들은 침이 음식이나 물을 오염시킨다고 믿기에 음식을 하는 중에도 절대 간을 보지 않는다. 혹시 간을 보더라도 따로 덜어서 먹고, 입을 댄 식기는 음식에 넣지 않는다. 그리고 물을 마실 때도 주전자 비슷하게 생긴 그릇에 담긴 물을 입을 대지 않고 마시고는 옆 사람에게 건네준다. 얼마나 기똥차게 마시는지!
네팔사람들의 영원한 렛섬 삐리리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네팔의 18번이다.
렛섬 삐리리 렛섬 삐리리
우데러 러이저우 다다마 번쟝 렛섬 삐리리
엑나레 번둑 두이나레 번둑 미루거라이 다케꼬
미루거라이 호이너 마야라이 다케꼬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렛섬 휘날리며 렛섬 휘날리며 (렛섬은 손수건과 같은 것)
님과 함께 산 고개 날아 넘어가네. 렛섬 휘날리며
단발총 쌍발총으로 사슴을 겨눈다네
사슴이 아니고 사랑을 겨눈다네
가사는 아주 길다. 하지만 그걸 다 외우고 부르는 사람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