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서
몇 일 전 설교시간에 박목사님이 전한 말씀의 제목이다.
욥기를 통해서 고난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였다.
설교를 듣기 전 제목과 성경구절을 보면서 마음이 벌써 아팠다.
그 목사님의 가정적인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처한 여러가지 상황이 얼마나 힘들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참 고통스럽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교 중에 그 내용을 다 밝히지는 않았고, 나도 이곳에서 그것을 밝힐 생각은 없다.
그의 설교와 상관없이 나도 이런 생각을 해 보고 있었다.
욥.
억울하게 고난 받은 사람의 대명사.
요셉도 참 억울했고, 다윗도 참 억울했지만 상실의 아픔은 욥을 따라오기 힘들 듯하다.
지진 한번 났다고 몇 개월째 침대만 조금 흔들리면 불안한 현실을 돌아보면,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금방 심적 상태까지 안 좋은 것을 보면 욥은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겼을까?
늘 고민하고 있던 주제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욥을 읽으면 참 감사하다.
그 고통이 내 것이 아니라서 느끼는 안도감이 아니다.
고난이 끝나면 갑절의 은혜를 받기 때문에도 아니다.
인과응보의 틀을 깨는 것 때문에 감사하다.
사람들은 늘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전생을 나라를 구했나봐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한다.
우스개소리 중에 하나.
어떤 남자가 정말 완벽하다고 할 만한 여자를 만났다. 주위의 사람들을 다 놀라게 하면서 결혼까지 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 남자를 보면서 "넌 전생이 뭔 좋은 일을 했기에 이런 멋진 여자와 결혼을 하는거냐"하면서 다들 부러워했다.
그 때 한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한다.
"저 여자는 전생에 얼마나 죄를 지었으면 너 같은 놈을 만났을까!"
여튼 중국권법영화의 주제는 언제난 권선징악이다.
월트디즈니의 주제도 권선징악이다. 주인공의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원래는 죽게 되는 인어공주도 디즈니만화에서는 결국 살려낸다.
신기의 물약을 준 마법사를 마녀로 만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게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가고 배워간다.
누군가가 말한다. "잘 살려면 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독해야 한다"
착한 것으로 따지만 네팔사람들이 잘 살아야겠지만 이들은 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서의 독한 것은 꼭 악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가서 인과응보의 틀을 깬다는 의미는, 고난을 받는 것이 꼭 죄 때문만은 아니라른 것을 욥기는 알려준다.
선한 사람도 고난 받을 수 있다.
아니 선하기에 더 고난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 소중한 깨달음이고 감사의 조건이다.
어떤 고난을 당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고 어려운데, 사람들의 시선이 '뭔가 잘 못 한게 있을거야'라는 질문을 해 대고 있으면 마음이 상한다.
그래서 장애인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이들과 세상으로 잘 나서지 못한다.
사람들의 선입관은 무섭고 치사하다.
한 조사에는 흑인과 백인 중 누가 머리가 좋을 것 같냐는 질문에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인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아이큐 테스트 결과는(이것도 별로 신뢰를 하지 않기는 하지만) 거의 똑같다. 백인이고 황인이고 흑인이고 거의 똑같다.
단지 흑인들이 못살고 오랫동안 배움의 기회를 박탈 당함으로 사회적약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을 흑인들이 먼저 발견하고 노예로 백인을 썼다면 인류의 생각은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 눈 먼 소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부모의 죄인지, 그 소경의 죄인지 묻는 이들의 편견을 깨신 것이다.
그래서 욥기는 이런 편견을 깨는 이야기이다.
고난의 원인이 정말 다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
나의 죄와 나의 잘못으로 고난이 올 수 있다. 하나님의 시험하심으로 올 수 있다. 사단의 괴롭힘으로 올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던 겸손히 주님 앞에 내려 앉는 것, 어떤 변론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고난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이다.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보드 게임을 하나 사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멈추고 비를 피한다.
"얘들아 피했다 갈까, 아니면 그냥 갈까?"
우리의 선택은 비를 맞는 것이었다. 스쿠터에 4명이 앉아 쏙아지는 장대비를 맞았다.
생각보다 많이 맞았다. 하지만 함께 있어서 행복했고, 비록 차가 없어도 비가 내려도 아이들 3명과 함께 달린 텅빈 도로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이 날의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들어와 따뜻한 샤워, 그 때의 감격.
때때로 폭풍우 속에 잠시 서 있어 보는 것도 평온한 날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폭풍우에 서 있다면, 그래서 언제 이 폭풍우가 끝날지 모르겠다면
욥을 생각하라.
너무 슬퍼마라.
그리고 욥이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