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24절에 보면
바울은 23절에서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해서 더 유익하리라.
네팔에서 살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마오이스트의 내전으로 3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2015년 지진으로 1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사랑하는 이들이 이런 저런 모습으로 떠나갔다.
어제(12월 21일) 제천사고 현장에서 사랑하는 한 분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무런 예고 없는 일이라 더욱 황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팔에 살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죽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도 아마 그런 뜻이 아닐까?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남겨진 자들에 대한 미안함.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슬퍼하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
인생에 있어서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일어나는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번 태어난 인생은 언젠가 죽음으로 통해 끝난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곳, 살아가는 모습, 다 다르지만 죽음 앞에 모든 이는 평등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두렵고,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탈출구이고, 어떤 이에게는 수 많은 윤회의 한 고리이고, 어떤 이에게는 완전한 끝이고,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입니다.
그 무엇을 믿던 한번 시작한 인생은 끝이 있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추억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이 땅에서는 다시는 만날 기약이 없는 순간이 계속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나와 추억을 함께 나눈 이들이 하나씩 곁을 떠나가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4년간을 섬겼던 개척교회의 목사님이었습니다.
참 그 웃는 모습이 사람 좋아보이고, 남 아프게 할 줄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더 잘 되셨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개척교회를 마치고, 시골의 한교회로 부임해 가시고 그곳에서도 좋은 시골 목사님으로 사셨고, 그렇게 마지막 임지로 정한 곳에서도 선한 목자로 사셨던 분.
그 때 만났던 청년들과는 아직도 한국만 가면 만나면서 그 때를 기억하게 하시는 분.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는 인생.
아직 많지 않은 나이기에, 하고 싶으신 일도 많으셨던 분.
함께 토요일 청년예배를 마치고 맛난 음식을 해 먹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8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리고 그 분은 주님의 곁으로 가셨네요.
내일은 내 것이 아님을 아는 지혜가 우리에게는 과연 있는지???
보고 싶네요.
이 땅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더 보고 싶네요.
곧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