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여행과 글

네팔 동서횡단(2)

지니와 유니 2010. 7. 11. 23:01

 

11일(오일째)

그동안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달려서 국경에 도착한 김에 좋은 숙소에서 잠도 자고,

영국용병으로 나갔다고 영국에 정착한 기독교인 가정을 만나서 교제도 하였다.

영국에서 시민권을 얻어서 사는 그들을 보면서 언제나 저들이 누리는 문화를

네팔사람들도 누릴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동쪽의 인도국경지대.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은 인도이다. 인도의 실리구리이 가깝고, 차로 캘커타를 이동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차로 유명한 싯킴과 다질링이 연결된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칸첸중가가 보이는 지역으로 가는 관문이다.

 

예전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찰들에게 전도하는 시간.

전도지를 받아주고 읽어주고 질문까지 해주는 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이동하는 중에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 식사를 한 식당들에서 전도지를 나눌 수 있었다.

 

남쪽은 인도근처이기 때문에 인도식 음식이 많다.

로띠라는(난은 화덕이 굽는다) 음식인데...난과 비슷하다.

이 집에서 먹었던 소스가 특이해서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던 집이다.

그래봐야 단돈 300원에 한끼를 먹을 수 있었다.

 

오랫만의 휴식을 취하면서 먹었던 티벳식 칼국수...뚝바이다.

보통 국물이 하얀데 이곳은 간장을 넣어서 조금 더 짜게 만들었다.

남쪽은 땀을 많이 흘려서 소금기가 많은 음식을 먹는다.

이동하는 동안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그리고 음료라곤 콜라정도가 전부라서 하루는 콜라, 사이다, 환타만 15명 이상을 먹었던 날도 있다.

 

오늘은 푹 쉬자는 생각으로 있는데 버스가 출발을 하는 것이 있었다.

비록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미 온 길을 다시 자전거로 이동하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서 시위대가 와서 버스를 둘러쌌다.

간혹 불을 지르거나 돌을 던지는 경우가 있기에 서둘러 자전거를 내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차비도 다시 돌려 받을 수 있었지만 위험한 순간이었다.

군중심리란 대단한 것이다.

 

12일(육일째)

4일째 되는 날에 지나온 길이지만 저녁늦게 지나가는 바람에 보지 못한 풍경이다.

밀이 자라서 익어가는 더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이곳도 이미 지났던 곳인데...원래는 논도 있고, 집도 있던 곳이지만

작년의 우기때 뚝방이 터져서 사라져버린 마을이다.

지금 유엔의 도움으로 다시 재건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아침 대신 차로 하루를 열고 있다.

단돈 100원의 차 한잔으로 아침을 깨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강이 넓다보니 배로 고기잡이를 한다. 바다가 없는 네팔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풍경이다.

 

피로할 때 입에 넣고 깨물면 단내가 나는 코코넛이다.

100루피를 주었더니 잔돈 맞춘다고 한참을 뒤지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

이것이 리얼네팔이다.

 

구급차에 가짜 환자를 나르면서 돈을 받는다고 구급차를 통제하자

구급차가 다시 길을 막은 모습이다.

곳곳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길을 막은 종족, 이익단체, 정당의 모습을 보면서

네팔은 언제나 하나가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네팔에서 처음 먹어본 양파 튀김.

10년을 살았지만 양파를 꽃 모양으로 만들어서 밀가루 묻혀서 통채로 튀겨 먹는 것은 처음봤다.

사진에는 다 찍지 못했지만 간혹 신기한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행복해졌다.

 

13일(7일째)

우연히 만난 카트만두로 들어가는 버스

우리는 헤타우따까지만 얻어 타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왔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산길과 강길을 따라서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길.

이길은 비가 오는 우기철에는 아예 가지 못하는 길이다.

저 보이는 강들을 몇 번이다 넘어갔다.

 

14일(9일째)

우리가 이미 지났던 헤타우따와 바럿풀을 다시 지나서 부뚜왈이라는 마을까지 이동한 날이다.

이날은 거의 180킬로미터를 이동했는데, 산도 하나를 넘어야해서 새벽 5시에 출발해서

결국 저녁 8시가 훨씬 넘어서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바럿풀을 지날 때 데모대가 타이어를 태우면서 도로를 막아선 모습이다.

타이어를 태우면 그 냄새와 연기가 정말 고약하다.

하지만 가장 저렴히 도로를 막는 방법이라서 네팔은 아직도 이 방법을 선호한다.

 

산을 넘어가면서 너무 더워 웃통을 벗은 모습.

이걸 왜 하고 있을까 절로 생각이 들지만 참 추억이 되는 장소이다.

 

길가에 차를 태워 위협을 주는 모습

동쪽은 원래 더 심하게 데모를 하는데 이 때는 동서가 동시에 2주일 이상을 번다를 해서

경제적인 손실과 어려움이 엄청 많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익혀둔 타이어 교체.

감사하게도 나는 한번도 타이어가 펑크나지 않았지만 같이 했던 형제의 타이어가 한번 터졌다.

그것을 고치는 장면.

장거리 자전거 여행은 자기 스스로 수리 능력이 꼭 있어야 한다.

나중에 오토바이로 전국순회전도를 할 때는 오토바이 수리를 배워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만난 아이들의 모습

우리도 함께 어울려서 수영을 잠시 즐겼다.

 

너무 너무 너무 힘들어서...16일(10일째)

사진은 없다. 너무 비슷한 풍경과 상황들...함께 했던 형제도 지쳤는데 사진을 찍지 않았다.

보통 여행을 하면 사진을 내가 찍는데 이번에는 형제에게 맡겨서 내가 원하는 장면을 다 얻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17일(11일째)

2일전부터 도로가 열려서 조금은 위험하게 도로를 이동하였다.

마지막 네팔인도서쪽 국경에 도착을 했다.

서둘러 표를 끊어서 헤타우따까지 그리고 다시 카트만두까지 버스로 이동을 했다.

 

11일간의 1300킬로미터 이상의 동서횡단.

전도도 하고 교회도 방문하고 네팔의 참 문화도 발견한 시간이었다.

또한 나 스스로의 체력도 점검하고 영적으로도 성숙한 시간이었다.

 

니와 11일간의 네팔동서횡단을 해 준 임대선전도사이다.

말라보이지만 어찌나 자전거를 잘 타고 체력도 좋은지...

서로 그렇게 생각했을라나???

끝까지 사고 안 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인생에 다시 네팔을 자전거로 동서횡단 할 수 있을까?

이 호기스러움이 계속 남아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 그리운 네팔을 생각하면, 어쩌면 다시는 하기 힘들 네팔자전거동서횡단을 추억해봅니다.

하나님 모든 일정 중에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