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성경묵상

ㅎㅇㄱㅎ 주일 설교

지니와 유니 2020. 3. 14. 22:32

2020. 03. 15() ㅎㅇㄱㅎ 설교

제목: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3: 15~16

내가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인생을 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정말 살고 있는 것인가? 나의 선택은 정말 옳았던 것인가? 나는 과연 어디쯤 있는 것일까?

 

예수님은 십자가가 목표였고,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고는 이루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고, 잔을 거두어달라고 소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달렸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년은 춥고 외로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지혜를 누렸던 솔로몬은 인생의 말년에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쯤 계십니까?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 자녀가 없던 세월의 아브라함, 형을 피해 도망을 가는 야곱, 형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는 요셉, 잘하면 할수록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요셉.

성경의 많은 인물들의 위태했던 모습이 나의 모습 같은 순간을 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인생의 아주 선택의 고비마다, 혹시 선택한 것은 아닌지, 다시 때로 돌아갈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10분을 기쁠려면 초콜릿을 먹고, 1시간을 기쁠려면 식사를 하고, 하루를 기쁠려면 이발을 하고,
1주일이 기쁠려면  여행을 하고, 1개월이 기쁠려면 차를 사고, 1년이 기쁠려면 집을 사고, 10년이 기쁠려면 결혼을 하고, 30년이 기쁠려면 공부하고, 평생 행복하려면 하나님께 구원받으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행복을 주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여튼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이 있고,  모든 것은 기쁨의 유효기간이 있고, 생각보다 그것이 우리가 투자한 시간에 비해 유효기간이 짧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그것만 이루어내면 행복해 질거 같은데 그것을 가진 후엔 그 행복이 오래 가지 않는 우리의 삶이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우리가 꿈꾸었던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치고, 무언가를 이루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 성공의 열매는 너무 짧은 시간의 행복만을 준채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허탈하고, 무기력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를 온 우주보다 더 큰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6일동안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우주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온 우주를 이미 선물로 받아 본 적이 있는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완벽한 만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다에 아무리 돌을 던져도, 그 돌의 크기와 갯수와 상관없이 바다를 완전히 채울 수는 없는 것처럼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키고, 영원히 만족 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를 온전히 만족케 하는 것은 우리보다 더 크신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위대한 선택,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채우실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작년말에 원래도 혈압이 조금 높은 편이지만, 몇 일동안 너무 높게 나와서 혈약약을 복용해야 할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몸무게를 빼기로 했습니다. 3달에 10킬로를 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달마다 5킬로, 8킬로, 10킬로가 목표였는데, 3일만에 3킬로 1달에 7킬로를 빼고 결국 3달 마지막 날에 10.1킬로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상태를 체트해야 합니다. 또한 정말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조절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와 틀을 같이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스스로에게 지쳤던 수년간의  저에게 던진 질문이며,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는 질문입니다.

 

 

1.       정말로 뜨거웠던 적이 있는가?

오늘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 중에  번째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정말 뜨거웠던 때가 있었는가 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강렬하게 운동을 해야 몸무게가 빠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습니다. 불교집안에서 자랐고, 누님은 대학교에서 불교회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죽음에 대해서,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읽은 예수님의 전기(아마 요한복음을 요약한 전기였던 것 같습니다)를 읽고, 예수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이 분은 대체 어떤 분이기에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자신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걸까? 이 분은 일반적인 위인들과는 다르구나, 그게 뭘까?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 찾아서, 나도 교회를 데리고 가면 안 되냐고 했습니다.

갈급함에 만난 하나님,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성령세례를 받고, 부모님도 없이 물세례를 받고, 가족구원을 위해서 신학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자연계에서 인문계로 바꾸고, 신학을 하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에게 혼나고 집을 가출하기도 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님 없다고, 결국 신학교를 갔고, 첫 여름방학에 고향교회 목사님께 부탁 드려 설교를 했고, 장남 첫 설교는 들으셔야 되지 않겠냐고 부모님을 초대했습니다.

그 후에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셨고, 권사님이 되셨고 아버님도 교회를 다니시고, 누님은 사모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좋았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아는 교회도 없고, 아는 목사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만으로 만족했고, 신학교 때는 일주일에 세번씩 철야를 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네팔에 왔고,  동안  77개군 정탐도 끝냈습니다. 사역도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몸은 피곤하고, 목표했던 것들이 이루어지면서 처음의 열정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현재 마음 상태는 어떠십니까?

그래서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에 던진, “ 사랑을 회복하라라는 말씀과 라오디게아 교회에 던진 뜨겁던지 차갑던지 하라라는 말씀이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에게 위로를 주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교회는 최소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최소한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갈 사랑, 다시 뜨거워질 열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뜨거웠던 고등학교, 대학교시절, 목숨 걸고 다녔던 전도정탐 시절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시절과 그런 장소가 있지 않으신가요?

그래 그곳에서 내가  주님을 만났었지가슴 뜨거웠던 장소.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았던 순간, 인생의 우선권이 바뀌고, 인생의 주인이 바뀌어 버린 놀라운 순간이 있지 않으신지요?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만시간을 전심으로 투자하면, 전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8시간이면  4년의 시간.

하루 3시간이면  10년의 시간을 투자하면 왠만하면 인정 받을 있는 전문가가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것도 이런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투자하면 되는 것을 알지만, 투자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꾸준히 투자할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고, 악기를 못하고, 운동을 못하고, 음식을 못하고, 한번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 적도 없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삶이 무감동, 무열정에 휩싸여 있는 것인 아닌가요?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지만 때로는 무관심과 귀찮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뜨겝게 사랑했던 때를 생각하면 함께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사랑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손을 잡을 때마다 가슴이 뛰진 않지만 행복할 수는 있습니다. 감정과 사실은 다를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도현의 연탄 ,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시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인생에 한번도 진정으로 뜨거웠던 적이 없지는 않는지요?

 

교회를 20 30 다니는데도 변화가 없을까요? 매번 억지로 예배시간을 맞추어 오는걸까요?

일주일에 1시간 예배, 1만시간을 채우려면 200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200년을 수도 없지만, 그렇게 채워지는 1만시간은 실제로는 별로 의미가 없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본인의 학업을 위해, 직업을 위해, 결혼을 위해, 취미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보다도 훨씬 적은 시간을 예수님께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혹시 한번도 예수님으로 완전히 뜨거워본적이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요?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습니다. 40도가 되면 끄고, 80도가 되면 끄고, 적당히 온도가 올라가면 끄기를 반복하면, 물만 증발되고 한번도 끓는 점에 도착해 보지 못한 물이 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별거 없더라, 예수 믿는 사람들도 별거 없더라, 예수님도 별거 없더라.

과연 그런가요?

정말 100도에 도착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적당한 말고 정말 냄비 뚜껑을 들썩이게 하는 뜨거움을 소유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냄비에 물을 받아서, 가스렌즈에 올려 놓아도 불을 켜지 않으면 물은 끓지 않습니다. 100도보다 높은 불로 가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끓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면, 경험을 하실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의 경험이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것입니다.

예전에는 뜨거웠는데 지금은 조금 식어 있다면 다시 뜨거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워 하는 사람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지만 한번도 예수님으로 가슴 뜨거워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수님은 나를 정말 뜨겁게 하시는 분인가?

또다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는 예수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인가?

예수님으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사람이 예수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으로 감동이 되는 ,  또한 나의 삶이 예수님께 감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번째 던지고 싶은 질문은 지금의 상황이 정말 최악인가?”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살피고, 그에 맞게 운동을 할지, 쉬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요요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하고, 당장 맛난 음식을 먹고 몸무게가 늘어도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사로 살면서 20년이 되었는데, 한번도 한국경제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5,000 역사 중에 가장 자유롭고, 가장 부강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1등을 하고 있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5579개의 물품 점유율 1위를 하는 물건을 69개나 보유한 나라입니다.

대표적인 오토바이 헬멧, 손톱깎기, 반도체, 조선,

외에 BTS, 여자골프, 소트트랙, 양궁, 비보이, 게이머, 아카데미 상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치루고, 맨바닥에서 시작한지 60년만의 일입니다.

전세계가 깜짝 놀라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을 당연시 여기고, 이제는 결과를 별거 아닌냥 이야기 하며, 헬조선이라고 합니다.

어느새 우리의 입에는 힘들다, 어렵다, 안된다, 못한다 붙어서 삽니다.

코로나19 나라가 어렵지만, 전세계가 한국의 대응에 극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이야기가 어떤 나라보다 과거의 우리나라에 맞던 때가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 17~19)

 

하박국이 들었던 예언은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답니다. 그 결과에 승복하고 하박국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지금의 우리의 상황이 이 정도인가요?

 

그런데, 마지막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무화과가 남았고, 포도나무도 남았고, 감람나무도 남았고, 밭도 있고, 우리도 있고, 외양간도 있습니다. 사라져 버린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하박국이 말하고 싶어하는 요지는 알겠는데, 내 이름으로 과실수 하나 땅 한평 가져본 적 없는 저는 참 가진 것도 많으면서 불평이군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우리의 불평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진 않을까요? “참 가진 것도 많으면서  도 불평이군

 

혹시 지금 우리의 상태가 이렇진 않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 되는 일보다 잘 되는 일이 많은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많은데 불만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벽돌공장이 사라지고, 그나마 석유질이 좋아져서 공기가 조금씩 좋아집니다.

바그마띠 강이 조금씩 맑아집니다.

22시간 정전이 될 때도 있었는데, 전기도 거의 안 나갑니다.

링로드 공사도 끝났습니다. 내전도 없고 왕정시대도 아닙니다.

한국 먹거리가 꽤 많고, 해산물도 사먹을만 합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독교가 부흥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2000년대초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살기 좋은데, 힘들다고만 합니다.

손님들이 사오신 라면으로 동료선교사를 초대하면서 감사했는데, 해산물파티를 하면서도 불평을 쏟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힘드시죠?” 그런데 힘들 줄 알기에 선택한 삶이지 않습니까?

많이 고난 받을수록 상급이 크기에 고난 받으러 온 것인데, 고난의 크기보다 우리 불평의 크기가 더 커져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어려워도 감사를 배워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실제로 불평보다 감사할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했던 주기도문에 넘쳐, 몇 달치 몇 년치를 가지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 상태이지 않는지요.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감사하기로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최악인가요?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여러분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누굴 만나기도 싫고, 아무 일도 하기 싫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바닥을 치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과연 지금의 우리의 상황이 불만만 이야기 해야할만큼 최악인가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은 것을 바라보는, 남은 것이 없어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불평보다는 감사의 조건이 훨씬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잘 살펴보면 잃어버리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몰랐던 지금 누리는 모든 당연한 것들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3.       마지막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나는 정말 올바르게 가고 있는가?”입니다.

나의 결혼생활은, 나의 사역은, 나의 자녀교육은, 나의 사회생활은, 나의 신앙생활은 바르게 가고 있는가? 나의 사역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분명히 목표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나요?

자꾸 하다보면, 오래하다보면 알게 알았는데, 점점 모르게 되는 상황이 힘드시지 않으십니까? 살아보면 어떨 처음엔 분명히 보였는데, 가면서 점점 보이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일 , 트레킹과 전도여행을 다녔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를 향해 트레킹을 갑니다. 멀리서도 보입니다. 시간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고개만 살짝 들면 목표가 멀리서도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표가 되었던 안나푸르나 봉은 앞에서 사라집니다. 걷는 방향이 바뀌고 어떨 멀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올라가지 않고 계곡으로 계속 내려 갑니다.   안개로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보이지도 않는 날이 이어집니다.

고도는 높아서 숨이 차고, 밤엔 춥고, 계단은 가파르고, 어딘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가야 될지도 모르겠고, 방향은 맞는건지?

지도가 있고, 가이드가 있어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의 인생엔 정해진 지도도 없고, 나와 동일한 길을 걷는 사람은 명도 없습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가장 문제가 아닐까요?

네팔의 산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목표가 가까와질수록 보일 있다는 것입니다.

멀리서는 보이지만, 산으로 들어가면 바로 작은 산에도 시야를 가리고, 나무숲을 걸으면, 계곡을 걸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처음 정해 놓았던 목표가 올바른 곳이었다면, 결국에 도착하게 것입니다.

어느 순간, 산을 넘어, 구름이 걷히고 바로 앞에 보이게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인내해야 합니다. 지도를 챙겨 보아야 합니다. 갈림길마다 잠시 멈추어 표지판을 보아야 합니다. 가이드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대단한 일을 이룬 엘리야의 탈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되지 않아도 탈진하지만, 때로는 목표로 했던 일을 이루고 후에 찾아오는 탈진이 참으로 심각합니다. 산만 오르면 끝인 알았는데, 앞에 산의 정상이 보일 .

히말라야 등정에서 사고는 오를 때가 아닌 하산할 때가 훨씬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 인생에서 시험은 때가 아니라, 될때와 때에서 내려와 다른 산을 올라야 때입니다.

무언가를  이루어서 이상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의 회로 자체가 멈추어 버린 .

하나님은 먹고 마시고 쉬고, 걷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지난 후에 세밀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새로운 비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저에겐 77개군을 다닌 후에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듯이, 우리 인생에서도 히말라야에 도착 하기 전에 조그만 산들을 수도 없이 오르고 내려야 합니다.

산만 넘으면 알았는데, 정상에서 보니 다른 산들이 보입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것입니다.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 쐬고, 한모금 마시고, 다시 배낭을 메고, 계곡으로 내려가서 다른 산을 오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경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루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달렸다라는 고백이 우리 인생의 끝에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쟁기를 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육상선수도 수영선수도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환희의 과거, 회한의 과거 그것이 무엇이든 추억으로만 남기고 우리가 곳은 앞입니다.

배낭을 다시 메고 조금 느려도 천천히 다시 걸어가실 있기를 소망합니다.

 

힘든 삶을 함께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생에 가장 완벽한 선택 예수님을 선택했고, 그것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때가 있었구나.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조금만 살펴보면 인생의 최악은 아니구나, 시간이 언젠가는 추억이 되고 간증이 되겠구나.

혼자 걷는다고 생각 했는데, 많은 이들이 길을 함께 걷고 있구나. 그리고 주님이 나의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시구나. 그리곤 너무 걱정 말아라, 하고 있고 올바른 길을 걷고 있구나, 길을 걸어주어서 고맙다라고 말해 주심을 느낍니다.

보다 완벽한 위로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디쯤 있으십니까?

주님으로 인해 불타고 계십니까? 주님이 주신 사명에 행복해 하고 계십니까?

해도 해도 되는 일이 없어서 실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목표로 했던 일들이 이루어져서 탈진해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경주와 같다고 말했던 바울의 이야기처럼, 마지막으로 저는 자동차여행으로 우리의 인생을 표현해 보며,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엔진입니다. 겉이 아무리 그럴싸하여도, 엔진이 없이는 움직일 없습니다.

하지만 엔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엔진은 불타고 있어여 합니다.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감동,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위해서는 차체도, 바퀴도, 드렁크도, 의자도 필요합니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없이,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들에 감사하면서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간에 쉬어갈 있고, 때로는 고장이 나서 고쳐 있고, 주유를 하기도 하지만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잊어버리면 됩니다.

 

뜨거운 열정, 주어진 것에 감사, 변하지 않는 목적지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가지 질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주님으로 인해 뜨거운가?

나는 진정 뜨거웠던 적이 있는가?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나의 삶에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한번은 100도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실 있기를 소망하며, 나의 사랑, 나의 뜨거움을 다시 찾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나의 상황은 정말 최악이기만 한건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잃어버린 것보다 여전히 남아 있는 복을 세는 지혜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생각보다 가진 것이 많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황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일어서 보니 물이 무릎밖에는 오지 않는 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곳을 빠져 나올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후회와 두려움보다는 처음 가졌던 목적지를 다시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때로는 내리막이, 때로는 수풀이, 때로는 진흙탕이, 따로는 강을 건너야 하지만 결국에는 도착하게 것입니다. 처음 출발할 바라보았던 목표가 정확했다면 말입니다.

내가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작은 산을 올라 행복했다면, 이제 계곡으로 내려가서 높은 산을 오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인생의 많은 산을 너머 너머,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상급을 주실 분이 바로 푸르 초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답은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십시오. 우리의 도움이 여호와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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