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장례식
사람이 죽으면 우선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린다. 가족들도 얼굴을 보면 안 된다.
그리고 네왈족은 여자도 만질 수 있지만 바운, 체트리 계급은 아들만이 사자를 만질 수 있다. 그리고 물론 계급이 낮은 사람은 만질 수 없고, 계급이 높은 사람은 계급이 높기 때문에 만지기를 꺼려한다. 간혹은 사람이 거리에서 죽어도 같은 종족, 같은 계급의 사람이 올 때까지 시신이 수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후에 입고 있던 옷 위에 하얀 천을 씌운다. 간혹 노란 천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신을 놓았다가 화장을 위해 강가로 이동을 한다. 보통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화장을 하는 것을 관례로 한다. 왕이 죽은 날에도 새벽에 죽었고, 사인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날 밤에 화장이 되었다. 이들은 죽은 이후 강가에 발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가 다음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남은 자를 괴롭히게 된다. 그래서 강에서 먼 사람들은 죽기 전에 사람을 날라 오기도 하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뻐슈뻐띠 같은 화장터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도 하나.
화장터로 이동을 위해 방스(대나무-마른 것이나 자른 것은 안 됨) 두 개로 나르는 도구를 만든다. 이동을 하기 전에 사자의 가슴에 쌀을 놓는다. 아마도 저승을 갈 때 먹을 것인 것 같다. 그리고 남자들은 자신들이 저너이를 오른쪽 어깨 쪽으로 위치를 바꾼다.
카트만두에서는 뻐슈뻐띠가 유명한 곳이지만 주위의 강가에 가면 된다. 태꾸, 비쉬누데비도 카트만두 인근에서 많이 가는 곳이다.
왕이 죽었을 때는 왕의 시신이 지나갈 때 쌀을 뿌렸는데 이는 왕이 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신에게 제사(뿌자)를 드리는 의미가 있다. 신전에서 쌀을 많이 뿌린다.
결혼식을 할 때도 어쩌따(어빌-붉은 염료, 쌀, 꽃을 버물린 것)를 뿌린다.
이렇게 이동을 할 때 싱커(바다소라)로 소리를 내는데, 시신이 가고 있음을 알린다. 싱커는 비쉬누 신의 상징이기도 한다. 힌두교에 의하면 죽기 전에 비쉬누를 세 번 부르면 지옥의 신 야마로부터 해방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쉬누의 화신인 람이나 크리쉬나를 죽기 전에 많이 부른다고 한다. 간디의 마지막 말도 “헤이 람”이었다니 이들의 내면세계는 대단하다. 대부분 여자들은 화장터에 가지 않는데 머허전 계급은 여자들도 화장터로 간다.
인도에서는 홀리바질(Holly basil)을 힌두교의 크리 슈나신과 비슈누신 에게 봉헌하는 신성한 허브로 여겼는데 힌두교의 성스러운 허브라는 뜻으로 '툴라시(Tulasi)'라 하였다. 현재에도 이 허브가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연다.'고 믿어 죽은 사람 가슴에 홀리바질잎을 놓아 둔다.
이렇게 해서 강가에 도착을 하면 먼저 시신의 발만 강에 담근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천사이로 옷을 벗기고는 하얀 새 천으로 알몸을 감싼다. 그리고는 얼굴을 씻긴다. (저승에 깨끗하게 씻어서 보낸다) 간혹 입에 물을 넣어보는데 실제로 죽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을 한다. 이 때 살아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시신을 들고 장작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3번 돈다. 다우라(장작)위에 시신을 올려놓는다. 다시 불을 들고는 세 번 주위를 돈다. 이런 의식은 공식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사자에 대한 명복을 빌고,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안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 후에 입에 불을 갖다 놓는데 이를 다그버띠라고 한다.
이렇게 시신을 다 태우면 재를 강에 밀어 넣는다. 물론 이 모든 행위는 바훈이 지시를 하고, 이 의식을 하면서도 계속 주문이나 신에 대한 뿌자 행위를 겸한다.
이런 예식이 끝나면 모두 물로 몸을 씻는다. 시체로 인해 부정해 진 몸을 정결케 한다.
네팔은 부모님이 죽으면 머리를 자르는데 베거(거지나 수행자)가 아니라는 표시로 전부를 밀지는 않고 꽁지머리처럼 뒷머리를 조금 남긴다.
아들은 화장터에서 옷을 버리고 하얀 천(자르거나 깁지 않은 천)을 걸치고 돌아온다.
집에 와서는 다른 사람과 방을 같이 사용하지 않고 따로 독방에서 기거하면서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다. 물론 밥도 직접 만들어서 먹는다.
13일 동안 이렇게 혼자 지낸다. 그리고는 매일 근처의 강이나 시내에 가서 몸을 씻는다.
강가에 가서는 노란색 염료와 조우(보리), 띨(검은참깨), 꾸스(볏단)을 잘 섞어서 뿌자를 드리면서 강에 뿌린다.
이 기간에는 소금, 기름, 고기, 물고기, 계란 등을 먹어서는 안 된다.
기우(때론 기라고 함- 인도에서는 기라고 사용. 요거트와 치즈의 중간 단계정도)와 밭(밥) 그리고 야채종류를 섞어서 먹는다. 소에서 나온 기우는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
밥은 점심에 한 번만 먹고 다른 시간에 다른 것- 야채 종류-을 조금씩 먹는다.
기우와 미수리(단맛을 내는 재료)를 섞어서 저녁에 물에 끓여서 먹는다.
13일이 되는 날에는 바운이 와서 다시 뿌자를 하는데 이 때 저승에서 다시 태어날 죽은 이가 필요한 물건을 바운에게 바친다. 옷, 침대 등등이 될 수 있다. 물론 행사가 끝나면 이것들은 모두 바운의 것이 된다. 13일이 지나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데 1년 동안 하얀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1년이 지나면 자신의 형편에 맞게 큰 뿌자를 연다. 이 때는 뿌자리 허루(예식을 거행하느 바운 집단)가 많이 몰려든다. 이것은 여러 집이 한꺼번에 모아서 열수도 있다. 잘 사는 집은 수 십명의 뿌라리 허루를 부르고는 제를 지낸다. 2년이 지나면 1주일, 3년이 지나면 11일, 4년 이후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위의 내용은 네팔 선생님들과 제사장들에게 들은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아래 내용은 책에 나오는 것을 요약한 것이다. 들은 내용과 함께 요약할 수도 있었지만 따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그냥 실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출가한 딸은 5일, 출가하지 않은 딸은 13일 동안 하루에 단 1번의 식사를 하게 된다. 이렇게 간단한 형식에 비해 아들과 며느리는 13일에 걸쳐 버터, 밥, 설탕, 과일, 생강, 레몬에 해당하는 음식만을 하루에 한 번 먹을 수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들의 경우는 머리의 정수리 부분에 '두삐'라고 불리는 머리꼬리만 남기고 머리와 눈썹을 모두 밀게 되고, 흰 두건을 머리에 두르며 상반신은 나체, 하반신은 허벅지 정도까지 오도록 흰 천을 두르게 된다. 이 13일 동안 아들의 네 다리로 이루어진 어떠한 물건에도 앉거나 잠 잘 수 없으며 볏짚을 깔고 모로 된 천을 덮고 잠을 자게 된다. 13일 동안 살아있는 어떠한 것과의 접촉도 없어야 하며, 음식 또한 식구 이외의 사람이 만든 것을 먹을 수 없다. 만약 살아 있는 어떠한 것과의 접촉이 있을 경우 이 의식은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13일 동안 지켜야 한다.
13일이 지나면 아들은 의식을 계속 지킬 것인지 아닌지 선택을 하게 되며,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경우에는 제사장인 바훈을 불러 의례를 치르고 흰 옷을 벗게 된다. 반면, 계속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을 경우, 자신의 능력에 따라 1달, 45일, 6개월, 1년의 기간에 걸쳐 지키게 된다. 이 기간동안 아들은 흰색으로 이루어진 옷만을 몸에 걸칠 수 있고, 고기, 생선, 토마토, 계란, 가지, 마늘, 양파와 어머니의 경우는 우유, 아버지의 경우는 바나나와 요구르트를 먹지 않게 된다. 이렇게 의식이 끝나면 매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전날 목욕제계와 단 한번의 식사를 하는 의식을 지키게 되고, 돌아가신 날은 음식을 마련하고 바훈을 불러 제사의식을 치른 후,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에 음식을 담아 강물이나 시내에 띄워 보내게 되며 이러한 물줄기가 없을 경우는 소에게 주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의식을 지키는 것일까? 이러한 의식과 형식을 지키며 따르는 이유는 자식으로써 부모에게 진 은혜에 대하여 보답을 하기 위해 괴로움과 슬픔을 느껴야 하고 부모님이 보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네팔에 농담 삼아하는 이야기 중에 결혼할 때 재산의 반, 장례할 때 재산의 반을 쓴다는 말이 있다. 결혼과 장례에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다는 말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좋지만 잘못된 세계관이 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살아가면서 많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