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이 있은 후 네팔의 헌법제정.
그리고 4개월째 인도의 국경봉쇄.
이런 상황 가운데 주변 선교사님들의 개인적인 어려움들이 들려온다.
잠시의 실수로 화재가 나서 어려움이 처한 분.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타던 오토바이가 넘어져서 다치신 분.
그리고... 지난 금요일 단기선교사의 죽음.
작년에 개인적인 어려움도 참 많았는데 주변의 지인들의 소식을 들으면 멍해진다.
이럴 때 뭐라고 위로할 수 있을까?
하박국선지자는 나라가 망하는 환상을 보고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녹아내린다는 표현을 한다.
예레미야는 매일 매일 울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그래서 두렵고 두렵다.
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는 하루에 그 모든 재산(우리 같은 범인은 평생 모으기 힘든 재산이다)을 잃었다.
그 모든 자녀를 잃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욕하지 않았다.
그 온 몸에 피부병이 생겼다. 땅바닥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벅벅 긁고 있다.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고 한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욕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내의 반응이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보통 욥의 친구들이 와서 말로 욥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을 잘 읽어보면 그 친구들은 겉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에 뿌리고 욥의 옆에 7일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다.
나는 과연 그렇게 해 줄 수 있을까?
7일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와 같은 처지에 처해서 앉아 있어 줄 수 있는가?
말보다 더 큰 위로를 주면서 살고 있는가?
인간의 위로가 때로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위로는 도리어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기도 한다.
또한 어줍잖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도리어 위험한 일이다.
욥도 그의 친구들도 7일간 침묵으로 서로를 위로한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인내했더라면...
그들은 그들의 지식으로 깨달은 하나님에 대하여 논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욥 너 마저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조목조목 지적해 주신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그보다 더 크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알 수 없어도 그렇게 주님의 나라를 향해 오늘도 한 걸음 걸어본다.
그리고 수 많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그 마음을 만져 주시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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