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여행과 글

무엇이 올바른 선택일까???

지니와 유니 2017. 12. 5. 14:37

어떤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내가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이다.

그것은 영화의 영상미도 좋고, 내용도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데 잔잔한 사랑이야기이다.

중에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클래식, 러브레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뜨겁고 돌아보면 행복해지고 마음 저린 사랑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사랑이 조금은 아쉽게 마무리 되기에 더욱 우리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위의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같고,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보시길 권해 드린다.

 

클래식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사람의 자녀들이 나중에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조금은 동화적인 이야기이다.

러브레터는 죽은 남친을 그리워하며 남친의 옛주소로 러브레터를 보내는데, 동명이인인 여자가 답장을 하면서 생기는 이야기인데 결론은 남친은 학창시절의 여자를 잊지 못해, 아이와 똑같이 생긴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사실을 나중에 알아 가게 되는 여인에게는 슬픈 이야기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조금은 어수룩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여학생이 남학생을 좋아했다는 , 그리고 어느 사고로 미래를 보게 되는데 남자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지만 결국 자신이 일찍 죽게 되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행복을 찾아 그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행복은 네가 행복해지는거야.” 그러면서 좋은 조건의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장면. 얼마나 멋져 보이는가! 하지만 웃기지 마라. 그건 사랑이 아니다.

멋져 보이는가? 하지만 그들이 만나게 다른 사람은 번째의 사랑이 된다는 사실. 나에게도 남에게도 그건 못할 짓이다.

 

클래식의 여인도 자신을 위해 결혼한 척을 했던 사랑이 죽자 얼마나 슬퍼  했는가? 여인의 얼굴에서는 슬픔이 어려 있다.

러브레터에서도 실제로 사랑을 했던 여학생에게는 말하지 못해 죽은 후에나 사랑이 남을 통해 전달되는 아픔, 자신은 사랑 받았다고 생각 했는데 결국 그것이 누군가의 대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아픔을 겪게 한다.  그래서 내가 영화 중에 가장 나쁜 남자 주인공은 바로 러브레터에 나오는 남자이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나오는 여인은 자신의 죽음을 알지만 남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10 정도 밖에는 되지만 그럼에도 그와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서 그를 만나러 가는 결단을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확인했고, 죽기까지 서로를 사랑했다.

 

클래식에서 남자 주인공이 그냥 여인과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상상하는 아픔 가득한 드라마는 없겠지만, 결혼하고 많은 어려움으로 싸움도 많이 했겠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지는 않았을까?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이 사랑인가? 그냥 자신이 죽기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되나?

러브레터의 남자 주인공이 학생 용기를 있었다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물론 아닐 있다. 하지만 여인에게 평생의 아픔을 남기고 먼저 떠나지는 않았겠지.

 

그런 면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나에게는 감동이자 용기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클래식을 정말 좋아해서 없이 많이 보았고, 러브레터의 잔잔함과 드라마틱함도 좋아한다. 하지만 남자들의 비겁함에는 박수 없다.

물론 그들의 선택의 배경은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그들의 사랑은 비겁했다.

 

얼마 형제와 대화를 하다가, 자신의 가정형편과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연애를 자신이 없어서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사랑한 아닌가 보네라고 말했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걸 뛰어 넘어야 하는 아닌가? 물론 말은 쉽지. 실제로 상황이 된다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결혼하고 나서는 그런 어려움이 없는가? 괜히 만나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까? 그렇다고 헤어져 주는 것이 용기인가? 그건 용기가 아닌 비겁함이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행복한 아닌가?

 

잠언에서는 마른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다.

동화의 이야기처럼 그들은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이야기는 이루어질 없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행복은 누리고 살아야 하는 아닌가?

전도서 9 9절에는 헛된 평생의 모든 하나님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몫이니라.

헛되고 헛되다고 외치는 전도자의 말에 이런 글귀가 있다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릴 있는 가지 되는 행복 중에 하나. 중에 최고의 행복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래 나의 부족함 때문에 미안해서 헤어졌다고 치자. 그런데 반대로 바꾸어 생각하면 자매가 그런 형편이면 나는 언제든지 버릴 생각이 있으니 자매도 그럴 것이라는 추리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미리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이지 않은가? 치사하고 용기 없음을 보게 된다.  나의 부족함을 보고 미리 헤어져주는 것이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사랑의 얼마나 가벼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누군가를 사랑 때는 사람의 형편이 아닌 그냥 사람이 좋아서 아닌가?

사람이 건강한지? 사람의 부모가 어떤지? 가진 재산은 있는지? 이런 저런 거를  따지고 시작했는가?

그냥 사람이 좋아서에서 나의 조건과 사람의 조건을 견주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닌 거래가 된다. 사랑이 아닌 거래를 하는 현대의 결혼 문화가 그래서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이야기를 빛나게 하는 하다.

 

여기 대단한 사랑 이야기 하나 덧붙이려 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지만 정말 대단한 사랑 이야기.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주어서 사랑하고 사랑이 변함 없을 것이라 약속하고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맹세하셨다는 것이다.

죽을 것을 알고도 남자를 만나러 가는 여인의 선택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보았다면 과한 표현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 사랑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일방적인 사랑이다. 성경은 이런 일방적인 사랑의 파노라마이다. 화를 내기도 하시고, 다독거려 보기고 하시고 안아 주기도 하시면서 끊임없이 창조주가 창조물을 사랑하는 이야기.

 

그래도 이야기가 좋다.

비겁하게 도망 가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 내는 사랑이라서 좋다. 좋아하는데 아닌 척하지 않기 때문에 좋다. 눈치 보면서 머뭇거리는 사랑이 아니라서 좋다.

 

이제 성탄이 돌아온다.

몸소 땅에 오셔서 사랑을 보여주신 역사적 사실의 시간에 다시 들어간다.

지금 너를 만나러 간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죽으러 간다

 

겨울 마음 따뜻해지고 먹먹해지는 사랑 영화들이나 보아야겠다.

그리고 사랑은 힘들고 어려워도 곁이 함께 지켜 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떠나는 순간. 이상 사랑이 아니다.

나는 어떤 선택의 사랑을 하면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