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를 보다보면 세상사가 다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권선징악. 선한 것은 권하고 악한 것은 징벌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고통 당하는 주인공의 입장에 함께 서서 복수해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훨씬 뛰어 넘어서도 이해가 되고, 도리어 쾌감을 느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복수도 용서도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힘이 없는자가 힘을 키워 복수를 할 수 있다.
아니면 용서해 줄 수 있다.
아니면 서로 화해하는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다.
용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선결요건이다.
조금 오해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는 위안부에 대한 용서를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용서해 주고 싶은데, 용서를 빌지 않는 사람들.
아마도 그들이 아직도 더 강자라고 생각해서일지도.
잠시 벗어 났지만,
난 복수와 용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
하나님과 인간이 차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하나님이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지는 행위.
복수, 복수를 떠나 인간의 잘못에 대한 댓가를 그냥 치르게만 해도 죽음과 지옥이 따라 오는 현실.
용서하셨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과 딸로 생각하신다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자녀들이 잘못을 하고도, 때로는 떼를 쓴다.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냥 용납하고 안아 주기도 한다.
그들의 죄와 그들을 분리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관계가 될 때이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의 하면 불륜.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 단어지만, 세상사가 그렇다. 나의 자녀들의 행위은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신뢰.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신 적이 없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셨을 때도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그리고는 "다 이루었다" 말씀 하셨다.
이제 우리 차례다.
하나님의 심판(복수)과 용서 앞에서 선택하라.
정리 되지 않은 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 본 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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