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습이 네팔 사람이다.
4년을 살면서 만났던 네팔 사람들의 모습들 중에서 특색이 있거나 우리와 다른 네팔인들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최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네팔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네팔의 현실적인 모습들도 담아 보았다. 네팔에 살면서 만나게 될 네팔인들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때론 공감이 되기도 하고, 때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많은 부분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므로 보편적이지 않은 일들도 있음을 미리 밝힌다.
* 난 항상 어린이.
네팔 사람들은 성인식과 같은 의식을 하고, 저너이를 묶는다. 우선 저너이를 묶고 출가 의식을 해야 죽어서도 대접을 받는다. 이런 힌두사람들은 25세 정도까지를 결혼하기 좋은 나이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들도 결혼 연령이 낮다. 처녀와 결혼해야 한다는 남자들의 생각에 아주 어린 나이(13~4세)의 신부들도 많다. 일부 종족에서는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남자들의 경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른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수염이 나지 않으면 어른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들도 수염을 부지런히 정리하지만 우선 수염이 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취약한 부분인데 화를 내면 어른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화를 내는 순간 이미 어린이와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염도 없고, 화를 잘 내는(?) 여자들은 어린이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되는지도 모르겠다.
네팔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대체로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너무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한국인은 어른답지 못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살다보면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잘못은 저쪽에서 했는데 대화를 하다보면 화를 먼저 낸 것 때문에 문제의 핵심이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잘, 잘못보다는 화를 낸 사실이 나중에는 주요 관심사가 된다. 그들은 자신이 잘못한 사실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화를 낸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화를 내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발 참을지어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 3자 대담은 절대하지 말지니.
“바훈, 체트리는 거짓말을 잘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순진하다.” 물론 이 말은 거짓이다. 진짜 바훈다운 바훈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도 신사적이다. 하지만 바훈, 체트리는 기독교인일지라도 우월의식이 있다. 그래서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부리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어떤 사람이 바훈의 잘못을 발견한 후 외국인에게 알려주어서, 외국인이 바훈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그 말을 해준 사람과 3자 대담을 하자고 하면 일은 이미 꼬인 것이다. 외국인이 앞에 있을지라도 결코 낮은 계급의 사람은 높은 계급의 사람의 허물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야기를 하더라도 힌두교인인 경우는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아주 옛날에는 바훈이 수드라계급을 죽여도 잘못이 아니던 때도 있었다.
이들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 계급과 의무라는 테두리를 아직은 벗어나기 힘든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하면 듣기는 하지만 싫어한다. 언제나 서로에게 막혀 있는 담이 허물어지는 날이 올지?
* 차마 말할 수 없어서...
관공서를 다니다 보면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한 경우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만 주면 좋을 것인데 잘 말하지 않는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도움을 주고 우리도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을 것인데도.
그러고는 우리와 함께 간 네팔 사람을 불러서 이야기한다. 외국인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쑥스러운지? 외국인인 경우 네팔에서 여러 가지 특혜를 받으며 산다. 하지만 네팔사람이 결코 외국인에게는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현지인들이 해가지고 온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우리는 이방인일 뿐이다.
* 찐네꼬 만체
시간 중심보다는 행사중심, 일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이다. 한국 같으면 만나기 힘들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을 별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번만 만나고 나면 “찐네꼬 만체”(아는 사람)가 된다. 네팔사람은 외국인과 아는 사이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아는 척을 해주면 좋아한다. 한국에 가면 난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도 고위공직자들도 아는 척을 해 준다. 네팔에서 일이 되려면 먼저 그들과 찐네꼬 만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일은 편해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일이 합리적이고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찐네꼬 만체만 믿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논리적으로 봐서는 당연히 되어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면 똑같은 말을 듣게 된다. 어떤 땐 안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자신들은 모르겠다고 한다. 책임부서를 찾는 일은 네팔에서 너무 힘든 일이다. 서로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어디서 서류 가지고 오면 해 주겠다”라는 말은 네팔에서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일은 ‘이 일은 아마 안 될꺼야.’라고 생각하는 일이 쉽게 될 때이다. 다른 사람은 세 달 걸렸다는 일이 삼일 만에 끝나기도 한다. 때때론 제일 높은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안 되던 일이 하급관리 한 사람과의 친분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네팔에는 ‘없는 것도 없고, 있는 것도 없다.’라는 말처럼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 컴퓨터 쓰지 않는 사무실
이런 글은 네팔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안 쓰고 싶지만 현실이다. 네팔처럼 많은 구호단체가 들어와서 활동하고 물자를 쏟아 부은 곳도 드물 정도인데도 아직 네팔은 발전기미가 없다. 댐 만들어서 주었더니 몇 달 만에 부품 다 팔아먹어서 작동도 안 되더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간혹 한국에서 구호품이 온다고 하면 그중에 몇 %를 자신들에게 줄 것이냐고 물어본다. 가난한 학교에 주려고 가져오는 컴퓨터도 관공서에 바치란다. 그렇게 받은 컴퓨터만 해도 수 없이 많을텐데, 이상하게도 네팔 관공서에서 컴퓨터 보기는 정말 어렵다. 윗사람들이 자기 집에 몇 대씩이고 재어 놓고 산다. 자기의 이속 챙기기에만 바쁜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만나게 되어서 서글프다.
물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일할 사람이 준다. 안 그래도 직업란이 심각한데 말도 안 될 소리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 수위아저씨, 차 나르는 사람, 서류 나르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어찌 보면 한국보다 더 세분화된 직업이 있다. 컴퓨터 한 대로 5명의 일거리를 뺏기에는 아직 네팔은 갈 길이 멀다.
* 서류 나르는 사람
힌두교에는 다르마라고 하는 의무를 강조한다. 바훈은 바훈의 의무가 있고, 수드라는 수드라의 의무가 있다. 남의 일은 할 수도 없고, 남의 일이라면 해서도 안 된다. 가이드는 포터가 하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관공서에 가면 답답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서류가 다음단계로 넘어가기만 하면 일이 끝나는데 다음 단계로 갈 생각이 없이 책상위에 쌓여 있을 때이다. 좀 옮겨 달라고 해도 그 서류를 옮기는 사람은 따로 있기에 기다리란다. 자신이 가는 길에도 들고 갈 생각은 안 한다. 그래서 답답해서 직접 들고 다닐 때도 많았다. 그렇게 하면 이틀이면 될 일을 기다리면 일주일이 지나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류가 다음 책상으로 가도 일하는 사람은 없고, 그 사람의 일이 끝나도 다음 책상으로 넘겨주는 사람이 놀고, 이렇게 몇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하니 언제나 끝나겠는가. 많이 변화되었지만 아이들도, 선생들도 학교에서 청소하지 않는다. 더러운 일이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일은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으니 어디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 홀라 홀라.... 언다지
힌두교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동일한 이야기인데 주체인 신의 이름이 다를 경우도 있고,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이 전혀 다른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무엇을 물어보아도 꼭 말 끝에 ‘홀라. 아마도... 그럴껄’라고 말한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나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아마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무엇하나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여유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참 흐리멍텅하다.
그래서 대충이라는 뜻의 ‘언다지’를 많이 쓴다. 대략 얼마쯤 되는지 물어봐야지 정확히 얼마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당황스러워 한다.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는 이들에게 칼로 자르듯 말하면 불편해 한다. 하지만 때때론 이들의 삶을 변화시켜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기도 한다.
말끝마다 “홀라, 홀라”를 찾는 문화가 사라질 때까지.
* 떠빠이꼬 비자르마 꺼띠썸머? (당신 생각에 얼마까지 원하느냐?)
가게를 가서 물건을 사면 듣게 될 말이다. 이것에 대해 얼마를 원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이미 바가지를 쓴 것이다. 장사꾼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라므로 밀라이 딘추- 잘 조정해 드리죠.” 그리고는 구체적으로 얼마까지 해 줄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정말 답답하다. 얼마까지 해 줄지를 말해야 비싸면 다른 곳에 가고, 싸면 살텐데.
그래서 우리도 간혹 동일하게 말한다. 당신 생각에 얼마까지 가능하냐고. 그리고 네팔 장사꾼들이 이 말이면 대부분 손을 든다. 이곳 저곳 가격을 조사한 후 “옆 집에서 얼마에 준다더라 그러니 조금 더 싸게 주면 사겠다.”라고. 그렇게 말해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이미 적정선까지 내려온 상태이다.
얼마를 원하는지 잘 말하지 않는 것은 네팔 사람이라면 거의 동일하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더 심하다. 말 안 해서 더 받으면 좋고, 적게 받았다면 말 한 번 더 하면 되니깐.
* 네팔에 간다?
네팔 사람은 국가의식이 있을까?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수 많은 소왕국이 통일이 된지 250년 정도 밖에 안 되고, 네팔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50% 가까이 되고, 문화도 서로 다르다. 카트만두 경우만 해도 250년 전에 주인이었던 말라 왕조 그리고 네왈족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샤 왕조시대이다. 상하개념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인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야 속상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별로 국가관이 없어 보인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네팔이라고 하면, 카트만두만을 지칭한다. 그래서 카트만두를 갈 때 네팔을 간다라고 표현한다. 즉 자신들은 네팔인이 아니다. 라이족, 림부족, 구릉족이지 네팔인은 아닌 것이다. 네팔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다.
* 카트만두에 살 면 다 빽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네팔 사람은 도움은 주지 못해도 해를 줄 수는 있다.” 거리에서 야채 파는 아줌마도 빽이 있다. 네팔은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외국인이 네팔인을 이길 방법이 없다. 교통사고가 나도 외국인은 돈 많으니 그냥 가라고 경찰이 말한다. 매일 일도 안하고 말썽만 피우던 직원이 갑자기 고발을 해서 경찰서를 다녀야 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비록 우스워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뒤는 알 수 없다.
*네팔은 힌두국가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힌두교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분명 카스트를 따질 것이다. 카스트와 상관없던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남녀가 따로 앉지 않았는가? 교회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따로 앉는다. 남자들이 앉는 자리는 여유가 있는데도 여자와 아이들이 북적대면서 땀을 흘리고 앉아 있다. ‘기독교인이 그러면 되냐.’라고 생각되지만 수 십 년 몸에 배인 습관이 사라지기에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한번은 생각해 볼 밖에는 없다.
* 남편이 시켰는데요.
길거리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싸우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니 부부는 아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여자가 어떤 일로 남자에게 실수를 한 것이다. 한참 다투다가 마지막 여자가 한 말은 “우리 남편이 그렇게 하라더라.”라고 말하면 싸움은 끝난다. 우선 그 싸움의 주체가 여자에게서 그 여자의 남편으로 바뀌었고, 남자들끼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싸움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나 한 마을에 사는 사람이라면 욕 한번 하고 돌아선다. 남편이 시키지도 않았겠지만, 아내가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는 순간 문제가 매듭 되고 만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 여자가 자신의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는 순간 모든 것은 남편이 알아서 할 것이다.
* 여자는 늘 주인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여자는 스스로 가치를 찾기 힘들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 결혼 후엔 남편, 남편이 죽은 후엔 아들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과부는 색깔 옷도 못 입는다. 결혼식 때 남편이 신두루(붉은 염료로 가르마에 바름)를 해 주어야만 드디어 아내가 될 수 있다. 간혹은 결혼 후에도 이것을 안 해주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는 여인들도 있다. 그래서 여성의 날인 띠즈에는 모두 남편이 오래 살기를 빈다. 속 썩이는 남편이라도 있어야 든든하니깐.
* 헤어질 때는 원수가 된다.
네팔에서 참으로 힘든 부분이다. 일 잘하던 사람도 그만 두기 전에 꼭 사고를 친다. 돈을 떼어 먹던지. 우리도 모르게 사고를 치고 도망간다. 우선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이 자의던 타의던 문제를 일으킨 때문이라는 생각이 이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일로 만난 관계가 아니면 서로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함께 하다가 헤어지기는 참으로 힘들다.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는데 그것을 한 번 정도는 경험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를 바란다. 모든 네팔인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힌두사상과 자본주의가 애매모호하게 만난 영향이랄까? 하여튼 사람 사귀기 힘들다. 속을 알기 힘들다.
* 버이할처니 (되어야만 한다)
오피스에 가서 무엇을 부탁하면 무엇이던지 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몇 일이 지나서 가면 일은 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거절을 못했다고 해서 해 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속이려는 의도는 아니라도 일이 잘 안될 수 있는데 그 때 말에 책임을 지라는 식의 대화는 위험하다. 그 성의만으로 감사하고 다음에는 정말 되도록 부탁할 밖에.
* 툴로 만체와 사노 만체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누가 더 툴로 만체인지를 이들은 꼭 따진다. 그 사람에게 모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별로 좋지는 않지만 아무리 말해도 안 되던 일이 그 오피스의 짱에게 이야기 하면 쉽게 해결 될 때도 있다. 아래 사람들은 어떤 일을 스스로 결정해 버리면 나중에 그 책임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러워 한다. 일을 할 때는 먼저 누가 툴로 만체인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사노만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마라. 때때론 그들이 일의 키를 들고 있는 사람이다. 일에서 툴로냐 사노냐(직책)를 따지는 것이 아닌 사람을 툴로와 사노로 나누는 이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주방장은 바훈
또 다시 카스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훈은 다른 계급이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 부정한 음식이니깐. 여행을 갈 때 자신들이 먹을 것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기구를 들고 가기도 한다. 그래서 아주 고급 음식점이나 호텔에서는 주방장이 바훈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훈계급들은 오기를 꺼려한다. 몇 년 전까지는 네팔 사람들은 외식을 잘 하지 않았다. 돈이 있는 사람들도 외식을 꺼려했지만 네팔에 여러 종류의 식당들이 생기고 인도영화의 영향으로 외식이 약간 보편화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음식의 청결여부보다는 누가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언제나 사라지려나.
* 목회자는 고달파(계급)
기독교인 중에 아직 바훈이나 체트리 계급이 많지 않다. 그래서 목회자들 중에도 바훈계급의 사람들이 많지 않다. 종족도 다르고, 계급도 낮은 사람이 설교를 하면 바훈 계급의 사람들은 무시를 한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바훈의 일이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손꼽히는 교회인 파탄교회도 목회자가 네왈인인 까닭에 교인의 대부분이 네왈사람들이다.
성경에 나오듯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당하지 않았는가. 한국도 자신의 고향에서 목회하기 힘들다. 하지만 네팔은 다르다. 자신의 고향이 아니면 목회하기 힘들다. 특히나 카스트라도 낮다면 정말 힘들다. 복음이 계급의식에 막혀 숨을 못 쉰다. 안타까운 현실.
*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은 정말 듣기 힘들어.
사고를 내고도 미안하다 말하지 않고 웃고 있는 네팔 사람을 볼 때, 큰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을 볼 때 우선 화가 난다. 하지만 이들의 세계관에서는 미안할 것도 감사할 것도 없다. 자신이 쌓은 업도 자신이 쌓은 선행도 다 자신이 받을 것임으로 남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자신이 하는 것을 고마워 할 필요도,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만든다. 하지만 미안할 때, 고마울 때(이것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네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 굴리오 미토 처 라또 라므로 처 (단 것이 맛있는 것이고, 붉은 것이 좋은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말이다. 네팔 사람은 단 음식을 좋아한다. 머살라(향신료)가 든 매꼼한 음식을 좋아하지만 행사가 있거나 신에게 드리는 음식들은 단음식이 많다. 설탕물에 넣어서 설탕물이 뚝뚝 떨어지는 과자와 단내로 파리가 잔뜩 꼬여 있는 과자를 태연하게 먹는다.
옷도 온통 붉은 색이고 띠까를 할 때도 붉은 색이다. 특히 여자들이 많이 선호하는데 결혼을 한 여자에게만 붉은 색이 허용되고 과부는 안 된다. 띠즈에 뻐슈뻐띠를 가면 온통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들로 그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지겹지도 않나?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추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티벳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밤새 염불을 외우면서 모여서 밤을 샌다. 결혼 피로연도 밤새도록 시끄럽게 음악을 연주하면서 논다. 아무도 야단을 치는 사람도 없다. 우리나라의 판소리처럼 이들도 전통노래를 하는데 남녀가 마주 앉아 한번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노래를 한다. 후렴같이 반복되는 부분도 있고 해서 노래가 정말 길다. 일년에 노는 날이 적으냐.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처럼 놀거리가 부족한 이들은 그냥 그렇게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 은행원은 갑부
우리나라 은행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원이 부자 되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팔은 다르다. 다른 직장보다 월급도 많다. 그리고 은행창구에 앉아 있는 아가씨들은 라나 집안의 사람들이 많다. 줄 없이는 들어가기 힘들다. 네팔은행의 수익도 높은데 그 수익을 연말에 나누어 가지게 된다. 그것이 때론 일년 연봉보다 많기도 하다. 호텔, 은행, 관광업을 꽉 잡고 있는 사람들은 왕가와 라나가들이다.
* 커이, 께 거르네?
어떤 일이 발생하면 꼭 하는 말이다. 책임지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운명, 신의 뜻으로 여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쩌겠냐?”라고 생각하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 힌두교의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 생색은 혼자 다 내네.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가 이름이 날만한 일이 생기면. 나서서 자신이 한 것처럼 하는 습성이 있다. 어떤 행사를 하면 사람들 소개하는 것으로 시간이 다 간다. 그리고 나와서 다들 한마디씩 해야 한다.
* 아버지의 아버지도 했으니깐.
힌두교가 애매모호한 종교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나름의 법규와 타당한 신화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은 산스크리트어로 전해지고 번역된 내용은 일부이다. 모든 종교행사에는 바훈이 온다. 그러니 굳이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자세히 알 필요도 없거니와 알 수도 없다. 바훈 안에서도 학문적으로 연구를 한 사람과 대를 이어 사제를 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자신이 해보지 않은 것을 잘 하지도 못하고 그 이유도 잘 모른다. “왜 이걸 하는 거죠?”라고 물어보면 몇 마디 하다가 궁색해지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했으니깐. 이유도 없이 되 물림 되는 힌두생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소풍가듯 사원을 간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부모들이 하던 일들을 따라 한다.
힌두교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힌두교인은 태어나면서 되는 것이야.” 그들에게 힌두교는 종교가 아닌 삶이다. 아!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는지.
*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는 밑 빠진 독
언젠가 한국에서 장애인 사역을 도와줄 때가 있었다. 그 때 방문한 장애인의 집은 잊혀지지 않는다. 프라이팬 4개, 밥통 3개, 전기장판 3개... 쓰지도 않으면서 쌓아 놓은 짐들이 좁은 방에 그득했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주지 못하는 삶을 보았다. 네팔이 그런 상태이다. 힌두의 가르침의 일부에는 나누어 주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이들은 받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고 마음으로 인정해 버린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넥타이 주면 양복 달라고 한다.” 언젠가 컴퓨터를 후원하려도 들었던 황당한 이야기도 생각난다. 사무실마다 컴퓨터를 주되 프린터도 함께 달라고, 여러 컴퓨터에 하나만 연결하면 될 것을 그렇게 안 주려면 말라니 받는 사람이 더 무섭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지갑이라도 뒤져 콜라 한 병이라도 사주는 사람.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이라고 집에서 키운 닭을 잡아 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풍성해진다.
* 몰라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네팔 사람과 살아가다보면 자주 당하는 일이다. 이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밝히기 싫어한다. 또한 카스트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정말 알아서 ‘훈처’라로 하는지 그 진위를 파악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알았다고 하고는 결국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 자매혼, 형제혼
얼마 전에 읽은 신문에는 시골의 한 집에서 다른 집과 형제 4명, 자매 4명이 동시에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요즘은 많이 사라진 풍습이지만 삼촌과 결혼해야 하는 풍습이 있는 종족도 있고, 여자 한 명에 남자 여럿, 남자 한 명에 여자 여럿(네팔에도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다. 하지만 일부 남자들은 아직도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이 있다) 그것도 자매들이 동시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힌두교의 중요서적 마하바라트의 바라기타에 크리슈나와 함께 등장하는 아르주나의 다섯 형제도 한 여자와 결혼했다. 어떤 꼬마는 형의 결혼식에 따라 갔다가 덩달아 결혼식을 올려서 10살도 되기 전에 신랑이 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지금의 왕 가넨드라와 그 전의 왕 가넨드라의 형 비렌드라는 라나가의 자매와 결혼했다. 두 형제가 두 자매와 결혼을 한 것이다.
이렇게 결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생각이 된다.
하나는 상위 계급들이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 재산도 지키려는 의도이다. 하위계급과 결혼을 하는 순간 계급이 떨어진다. 이렇게 결혼함으로 자신들의 재산도 상호간에 지키게 된다. 인도에서 화장 시 아내를 같이 화장시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산권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돈이 없어서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결혼을 시키지만 시골에서는 돈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두 번 하면 두 배가 들게 될 결혼 비용을 한번으로 줄이자는 의도이다. 결국 부모가 정해준 배필과 결혼할 것이니 맏형이 20살이고 막내는 10살밖에 안되었던 무슨 상관인가?
우리나라의 민며느리제도나 데릴사위제도와 같은 모습의 제도가 존재하는 종족도 많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셀파족은 모계사회로 알려져 있다.
* 왜 조혼을 하는가?
남자들은 다 늑대다. 그래서 처녀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최대한 어린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래서 조혼을 한다. 아직 월경도 시작되지 않은 아이와 결혼부터 하고 본다. 여자는 참으로 네팔에서 고달프다. 시집살이도 얼마나 고달픈지, 남자들은 공부 많이 한 여자들을 싫어한다.
여자집의 식구들은 키워봐야 나중에 돈 들여 시집보내야 하는 아이를 빨리 결혼 시키니 얼마나 마음 편할까?
이런 저런 상황이 만들어낸 조혼. 하지만 교회에는 노처녀들이 늘어만 간다.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는 그녀들의 신앙을 감당 할 수 없는 이 땅이 밉다.
* 사촌 한 사람 잘 되면.
네팔은 세계에서 못 사는 나라로 손꼽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럴 정도는 아니다. 물론 장기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끼를 누군가의 도움으로 연명해 가는 사람들은 아닌 셈이다. 네팔에서 나오는 곡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양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말 친척도 한 명 없는 고아가 아니라면 친척들이 어려운 가정을 돕는다. 그것은 힌두에서 말하는 의무(다르마- 의무를 다함으로 구원의 길로 나갈 수 있다고 믿음)의 실천이며, 체면 유지를 위한 것이다. 친척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잘 된 사람이 있으면 다들 도움을 받기 위해 몰려든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요. 천만의 말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두드리며 밥 먹게 된다.
* 구걸도 당당히...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 중에 사원에 있는 사두들과 사진을 찍고 난 후 돈을 요구하면 거지, 그렇지 않으면 진짜 사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 수행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두인지 아니면 밥 먹기 힘드니 구걸로 나선 거지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한 가지 동일한 것은 거지이던 사두이던 남의 가게에 당당하게 들어가서 시주가 되던 적선이 되던 요구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힌두교인들은 사두를 존경한다. 왜냐면 힌두는 세속을 버리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두의 축복을 받기 원하고 세속을 버린 이를 존경함으로 시주를 한다.
그럼 거지는? 그들은 다른 이에게 적선하는 일, 즉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에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이득을 보는 것은 실제로 선행을 베푼 사람이기에 아주 당당히 구걸을 한다.
힌두의 3대 신 중에 브라흐마를 제외하고 많이 숭배되는 비슈누는 화신으로도 화려하게 등장한다. 한 나라의 왕자(람과 부처)이거나 목동이자 뛰어나 지략가(크리슈나)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시바는 그 무시무시한 이미지와 걸맞지 않게 거지로 나타난다. 화장터를 뒤지고, 깡통하나 들고 구걸을 다니고, 때때로 명상을 한답시고 히말라야에 숨기도 한다. 어쩌면 사두나 거지의 모습에서 이들은 시바의 모습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 결혼 첫 날 밤은 묻지도 말라.
힌두교하면 요가나 카마수트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가나 카마수트라는 어찌 보면 힌두교의 분파이고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네팔의 왕궁지역이나 사원들에도 미투나라고 하는 성교장면을 조각한 상들이 많이 있다. 카마수트라는 한 때 브라만의 청년들에게 필독서였을 만큼 중요시 되던 때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라도 우리처럼 첫 날 밤에 어쨌느냐 하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개방되어 있는 듯 해 보이지만 또한 폐쇄적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들으면 억울하겠지만 여자는 남자의 소유이다. 함께 성의 기쁨을 나눌 대상이 아닌 남자에게 성의 기쁨을 주어야 하는 도구이다. 그래서 여성의 성적인 기쁨은 배제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하듯 여자들이 무조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떨 때는 아내에게 꼼짝도 못하는 남편도 수두룩하다.
* 네팔 사람들은 담배를 안 피우나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거의 못 보았을 것이다. 우선 담배를 사 필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개비담배처럼 길거리에서 한, 두개 사 핀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슈퍼에 주렁주렁 달린 것 중에 입담배가 있다. 입담배를 손으로 비벼 입속에 넣고 다닌다. 값이 싸서인데, 그래서 이빨이 거무죽죽한 사람들이 많다.
* 술을 먹기도 하나요?
힌두교에서는 술을 먹는 것을 죄로 여긴다. 하지만 이곳에도 가짜 위스키가 많고, 집에서 술을 담아서 먹는다. 엄청나게 먹는 술꾼도 있다. 하지만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집에서는 많이 마시지만 표는 잘 안낸다.
간혹 술 먹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경찰이 때리기도 한다. 술과의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네팔 사람 술 엄청 먹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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