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인교회에서 나눈 말씀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가야 할 길.
기쁨으로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용-----
고린도 후서 11장 23절에서 33절
그래도 가야 할 길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 10년 차 정도 되었는데, 아내가 우울증이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신과의사는 긍정적인 말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할 수 있게 하였고, 약물치료와 함께 그 아내는 많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10년 정도 되니 부부 사이가 불만이었던 아내는 남편에게도 그 정신과 의사를 소개시켜줍니다. 처음에는 가기 싫다던 남편은 몇 번 병원을 다녀오고 난 후부터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아내는 과연 어떤 치료를 받았기에 남편이 이렇게 변했을까 궁금했지만 남편은 절대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면서 중얼거립니다. 중얼 중얼…
남편은 과연 뭐라고 중얼거렸을까요?
“이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다”
혹시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주문을 외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이 사역이 내가 원했던 사역은 아니다. 네팔이 내가 있을 곳은 아니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만 계신가요?
여러분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자신이 가진 달란트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동일하고,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진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인지 고민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저는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라는 두근거림이 있어야 합니다. 가슴 떨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설렘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아를 보아도 별로 부담이 없는데 어떤 이는 고아만 보면 마음에 부담을 느낍니다. 어떤 이는 신학교사역을 어떤 이는 학교 사역을 어떤 이는 전도사역을 어떤 이는 의료사역을. 사람마다 그 부담감은 다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바울은 이방인에게 부담을 느꼈습니다.
네팔을 왜 택하시고 네팔에서 특별히 그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일에 부담감을 느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하면서 가슴 떨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트레킹을 가거나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길을 보면 꼭 가보고 싶다는 부담감을 느낍니다. 네팔 땅을 다니면서 직접 밟고 기도하고 싶다는 부담감이 늘 있습니다. 그 가슴 떨림이 지금까지 네팔에서 저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부담감은 느끼는데 재능이 없다면 그것을 해 나가기 힘들 것입니다.
사람은 달란트를 받은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고, 공부하는데 재능이 있고, 축구를 하는데 재능이 있고, 음식 하는데 재능이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부담감과 이 재능이 동일하다면 그 일을 해 나가기가 쉬울 것입니다. 자신의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저는 지도를 잘 보고,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오랫동안 걸을 수 있고, 아무 것이나 잘 먹고, 어떤 곳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재능이 있습니다.
행복을 느끼는 삶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일을 즐기느냐는 것입니다. 부담감도 있고 재능도 있는데 즐겁지 않아서 마지못해 하고 있다면 그 일은 노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천재처럼 세상에 나타났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하면서 즐거운 일을 찾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일을 해 나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중요한 요소는 내가 꼭 필요한 존재냐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재능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일을 하면서 보람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대사관에서 일하던, 코이카로 봉사를 하던, 음식점을 운영하던, 선교사역을 하던 가슴 떨리는 일을 자신의 재능을 잘 발휘해서 기쁨으로 해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이 보다 행복한 삶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역에 늘 가슴 떨림과 부담감이 있으면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기쁨이 늘 가득하고 “아 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자부심도 있기 때문입니다.
네팔에 살고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이런 행복감을 누리면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바울은 자랑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수고와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이게 뭔 자랑이 된다는 것일까요? 하지만 주님의 나라를 위한 수고와 희생은 성도를 성도답게 하고 자랑스럽게 만듭니다. 고난을 당할수록 더 힘이 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한 고난을 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나는 지금 자랑거리를 하나 더 만들고 있구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위한 고난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가서 유격장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저는 좋았습니다. 아 이런 훈련을 받았다고 자랑 할 수 있겠구나. 고난과 역경이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되기에 힘들고 어려울수록 힘이 납니다. 천국에서 자랑 할 것이 늘어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삶이, 사역이 어렵고 힘드십니까?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서 자랑할 것들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강함보다 약함이, 우리의 성공보다 실패가 우리를 더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75개 군에서 74개의 군을 다녔습니다. 매순간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전 자랑스럽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주님을 위해 나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오늘은 힘든 고난의 순간을 자랑으로 여겼던 바울을 기억하면서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하루에 몇 시간을 걸어도 한 사람 만날 수 없는 길을 걷고, 수 십 미터 절벽 위에서 두렵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 세상에 의지할 분은 주님 밖에는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간혹 세상의 모든 일에서 떠나 주님과 단독으로 만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늘 필요합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주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고난의 시간이 고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일대일로 대면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시간이, 고독의 시간이, 죽음과 대면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이런 순간이 되면 우리는 더욱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누리게 될 상급을 소망하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사도 바울은 당장이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소망한다고 말합니다. 단지 이 땅에서 사명이 남았기에 이 땅에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우리도 이 땅의 사명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고난과 죽음의 순간을 많이 넘길수록 우리는 더욱 주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됩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천국에 대한 소망이 그렇게 많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혼자만의 죽음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면 주님의 나라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여행을 사랑합니다. 그 나라를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다 떠나서 산을 걷다 보면 주님의 나라를 더 소망하게 됩니다. 더욱 더 그 나라에서 얻게 될 상급을 소망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산중에서 돌아갈 집, 사랑하는 가족들, 맛난 음식을 생각하면 빨리 돌아가고 싶듯이 우리도 주님의 나라를 늘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향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사도바울처럼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나라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 나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 없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매일 달밧만 먹으면서 쓰린 속으로 잠자리를 들면 풍성하게 차려진 천국의 잔치가 그리워집니다.
얼마 전에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봤습니다. 박지성선수가 선발이라는 이유만으로 아픈 몸으로 늦은 시간에 시청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37년 만에 쿠바를 남자배구가 이겼습니다.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얼마나 흥분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님의 영광스런 전쟁에 저와 여러분을 선발로 기용하고 계십니다. 이 전쟁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입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승리한 자에게는 상급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냥 응원만 하는 관중으로 아니면 후보로만이라도 불러주셔도 영광 일 텐데, 저에게 선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최전방 공격수랍니다. 제가 한 골 한 골 성공할 때마다 천국의 경기장에서는 환호가 떠집니다.
눈사태 난 길을 걷고,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고,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마다 기억합니다. 난 하나님 나라의 최전방공격수이다. 주님의 나라가 멀지 않았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의 드라마 중에 하나는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 하나님이 그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절벽을 끼고 걸어가다 보면,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주님의 천사가 저를 호위하고 주님이 벌떡 일어나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사고가 나도 아무도 도울 이 없는 길을 걸어도 그곳에서도 주님은 저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땅을 밟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밟은 그 땅 그 땅마다 천군천사들이 길을 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가면 주님이 기쁨으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십니까?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십니까? 주님께서 주실 상급을 기대하십니까?
혼자 있음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주님께서 바로 곁에 계십니다. 지금 고난의 순간을 혼자 있음의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기억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은 바로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3킬로그램 정도 살이 빠졌고, 갔다 온 후에 며칠 동안 아파서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는 55시간이나 차를 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미꼬뜨에서 힐사를 가는 길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4000미터가 넘는 산중에서 비박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70세 노인이랑 말입니다.
수 백 미터 절벽으로 눈사태가 나서 길을 건널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얼음이 어는 산 중에서 오리털 파카 하나 입고, 판초의를 둘러쓰고 밤을 새야 했습니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산중. 죽음과 가까이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누가 기억났겠습니까?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이 기억났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조그만 일에 싸우고 토라지고 다시는 안 볼 듯 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습니까?
죽음의 순간,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그들조차 사랑하게 되고 미안하게 됩니다.
더 사랑해 주지 못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저는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넘깁니다. 오토바이가 절벽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해갑니다. 수심 1미터도 넘는 곳을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야 합니다. 오토바이 뒷 브레이크가 없는 채 3일 동안 카트만두로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몇 시간씩 아무도 없는 길을 절벽이 무너진 곳을 낙석지대를 눈이 쌓인 산을 넘다 보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중한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더 잘해 주지 못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멋지게 순교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솔직히 죽음이 두렵습니다. 나 하나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남겨질 가족을 생각하면 늘 두렵게 여행을 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가 늘 따라다닙니다.
이번이 마지막 일 수 있다는 생각, 그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던 바울은 그의 편지마다 사랑을 표현합니다. 감사를 표현합니다. 늘 유언장과 같이 편지를 씁니다. 언제 내 생애가 끝날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늘 지금이 내 인생 마지막이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보아야 합니다.
좀 더 좋은 남편이 되어야겠다. 아빠가 되어야겠다. 물론 돌아오면 금방 지친 몸을 쉬기에 바쁘지만 늘 저에게 전도여행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를 기억하게 해 줍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십시오.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기에…
지금 옆에 계시는 분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난의 순간, 육신적인 어려움의 순간, 재정의 어려움, 사역의 어려움, 네팔에서의 외로움과 힘든 상황들을 만날 때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소중한 사람은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세 번째,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십니까?
아직도 택시비로 화가 나십니까? 남들보다 비싸게 물건을 산 것 같아서 화가 나십니까? 운전을 너무 위험하게 하는 네팔 사람들을 보면서 화가 나십니까?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 되기 때문에, 집에 물이 부족해서. 네팔 동역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네팔의 정치상황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십니까?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힘들고, 오랫동안 살아서 힘듭니다.
바울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를 배웠다고 합니다. 저도 여행을 다니면 조금 더 감사하게 됩니다.
네팔의 주식이 달밧입니다. 말 그래도 지방에 가면 달밧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달밧을 좋아하는 저도 아침에 찌아에 비스켓 하나 점심에 짜우짜우 저녁에 달밧으로만 3일 정도 먹으면 힘이 빠지고, 나중에는 먹기가 싫어집니다. 콜라 한잔이 그립습니다.
그럴 때면 집에서 남긴 반찬 하나가 그리워집니다. 지방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은 카트만두에 올라올 때 먹을 것들이 떠오릅니다. 이번에 카트만두 가면 뭐 먹어야지. 한국으로 들어갈 때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은 참 간사해서 그런 상황에 놓이면 금방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만드는 부족함을 경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차가 있어도 걸어보기도 하고, 먹을 것이 많아도 굶어 보기도 하고. 안락함을 잠시 포기하는 것이 감사를 감사답게 합니다. 그래서 정말 힘든 네팔의 지방전도여행은 저에게 감사가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만들어줍니다.
빈대와 벼룩에게 시달리다 보면 집이 어찌 그리운지 모릅니다.
하루 종일 먹을 것도 거의 없이, 어렵고 힘든 길을 걷다 보면 헛간조차 천국이 됩니다.
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하십니까? 최소한 전도여행을 다니는 순간은 매일 매 순간 감사하면서 잠자리에 듭니다. 수 백 미터 낭떠러지를 무사히 건너오면, 휴 한숨 쉬면서 감사가 넘칩니다.
감사가 사라지는 순간 더 이상 기독교는 생명이 아닌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데 감사가 사라졌다면 떠남이 필요합니다. 궁핍으로 자신을 내 몰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감사가 사라지셨습니까? 그것은 무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넘치기에 사라진 감사일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고비마다 감사가 넘쳤던, 자신의 육신적인 연약함에도 감사가 넘쳤던 바울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외 전도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주님의 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도박과 도전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산길에서 너무 위험한 길이 나오면 돌아가야 합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순간 마지막이 됩니다. 사역과 삶을 살면서 도전과 도박을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실패하게 됩니다. 투자와 투기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소리를 무시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산을 걸으면서 양 귀에 이어폰을 다 꽂고 걷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음성에, 주변 사람들의 소리에, 자연이 알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돌아설 줄 알아야 합니다. 길을 잘 못 들었다면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고집을 부리고 더 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돌아섬.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혹시 지금의 삶이, 사역이 뭔가 잘 못 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잘못된 길인 것을 알고도 계속 걸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삶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역을 하러 가지만 폭포를 만나고, 시원한 계곡을 만나고, 그늘을 만나면 쉬어갑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지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만나서 대화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연에서 힘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짐의 무게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짐을 잘 살펴보면 어떤 것은 필요가 없는데 계속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단순화시키고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페이스를 조절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끝내 버릴 듯 걷다 보면 다음날 지쳐서 걷지를 못하게 됩니다. 마음이 급해져도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수를 늘 휴대하셔야 합니다. 전도여행의 제일 중요한 것은 수통과 정수기입니다. 정수된 깨끗한 물을 늘 휴대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기도가 없다면 우리가 목마르게 될 것입니다.
지도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여행의 기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낙석지대를 빨리 통과해야 합니다. 절벽지대 낙석지대를 지나다 보면 힘이 들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지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대는 빨리 통과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난 어떤 유혹이 와도 견딜 수 있어 이것처럼 바보 같은 행동이 없습니다. 빨리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혹시 사역에서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 유혹이 있습니까? 그 자리를 빨리 떠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계속 가야 할까요? 바울은 이 고난과 역경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을 위해 드렸던 희생과 고난을 이야기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은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될까요? 그래서 기대가 됩니다.
주님의 위해 써 내려가는 자랑, 그 자랑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지니의 여행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부의 동전 두개(지니의 성경소설입니다) (0) | 2011.08.24 |
---|---|
롯과 룻 이야기 (0) | 2011.08.16 |
내가 가는 이 길 끝에는... (0) | 2011.05.05 |
그리움 (0) | 2010.07.25 |
어디서 자는 잠이 최곤가? (0) | 2010.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