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편지를 보내고 사진을 올려드리려고 햇는데, 뭐가 문제인지 사진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진을 못 올리고 집에 갈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서부지역정탐 일지를 보내드립니다.
그냥 혼자 나중에 참조하려고 적은 글이라서 구체적인 내용과 감동적인 사연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다니나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 올려 놓습니다.
서부지역정탐.
(2012년 2월 8일부터 17일)
셜란-롤파-퓨탄-바그룽
이번 정탐 전도여행에는 머노즈라는 형제가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은 전도지와 풍선을 챙길 수 있었다.
가스와 코펠버너를 챙기고, 아직도 추운 날씨를 생각해서 이번에 장만한 오리털 파카도 챙겼다.
2월 8일가는 버스표를(1000루피)를 끊어 놓고(월요일) 머노즈에게 수요일 12시까지 도착하라고 연락을 했다.
헤따우따에서 차로 와서 다시 발라루버스팍에서 이동을 해야 한다.
간밤에 비가 왔다. 그것도 겨울에 오는 비치고는 참 많이도 왔다. 오켈둥가를 가야 하는 형제들에게 오토바이를 빌려 주었는데 걱정이다.
낮에도 계속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비옷을 입고 짐을 두 개나 챙겨서 짐을 나섰다. 우선 스쿠터로 집에서 나와서 링로드 근처에서 스쿠터를 세워두고 버스에 올랐다.
중간에 벌쿠에서 머노즈를 만나기로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해서 버스팍으로 바로 오라고 연락을 하고는 버스팍을 이동을 했다. 비가 주룩주룩 잘도 내린다.
여름에는 비가 와도 옷이 적고, 금새 옷이 말라서 문제가 없는데 겨울에 비가 오면 옷을 입고 다녀서 땀이 많이 나고, 옷을 말릴 방법도 없어서 더 어려워진다.
차를 타기 전에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다. 요즘 네팔의 식비가 너무 올랐다. 처음 네팔에 왔을 때 30루피 하던 밥값이 기본 80루피, 휴게소나 롯지들에서는 100루피다.
차에 짐을 넣은 칸이 여유가 없어서 짐을 위에 실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밤새 차가 달린다. 머노즈는 나라얀가드를 벗어나서 서부로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네팔인들 중에 특별한 일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지방에 간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다.
비록 경비는 두 배로 들게 되겠지만 네팔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보여주고, 함께 전도하는 즐거움과 안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익중교회에서 만났던 형제중에 한 명과 같이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새벽 3시. 셜란에 있는 바자르나 컬렁가까지는 아직도 3시간 정도 더 가야 하지만, 좀 더 짧은 길을 지도로 확인한 바로는 Kapulkot라는 마을에 내리기로 했다. 이 마을을 기점으로 당과 퓨탄지역이 나뉘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경계지역이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롤파의 리왕까지 가는 길이 이미 뚫려 있었다. 아직 정기노선버스는 다니지 않지만 짚을 빌리거나 오토바이로 이동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약 73킬로미터의 거리라고 한다.
새벽 세 시 해가 뜨면 이동을 하기 위해서 롯지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비닐을 깔고, 집들이 있는 곳의 처마 밑에 앉아서 빨리 날이 밝아서 찻집들이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깨끗한 물을 받아 놓은 곳이 있어서 그 물을 끓여서 핫초코 한 잔씩을 마셨다. 그리고 우의를 둘러쓰고 앉아서 새벽을 기다렸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듯 주님을 기다릴 수만 있다면… 후물라 여행에서 비박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 해 주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이런 고생이 다 추억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5시쯤 되니 찻집들이 문을 연다. 차 한 잔 마시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면서 수다와 전도.
6시 30분에 출발을 해서 싸라빠니(거르빠)9시 25분 도착- 니깔빠니(9시 50분에 도착 후 짜우짜우 10시 20분 출발)- 심빠니를 지나서 주까르(1시 30분 도착)까지 가는 길이 오늘의 일정이었다. 전날 밤새도록 버스에 시달리고 와서 더 갈 수도 있었지만 혹시 이곳까지 버스가 들어온다니 하면서 기대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니깔빠니는 셜란과 롤파의 경계지역이었다. 산을 경계로 두 질라가 나눠어지는데, 니깔빠리에서 보이는 두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더하반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하루에 한 대 다니는 당에서 오는 버스가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이 길도 버스가 다닌 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도착하게 되는 띨라하라는 마을에 도착해서 12시에 출발을 하는 버스였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주까르라는 마을까지도 리왕에서 오는 버스가 한 대 다녔다.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다시 돌아오는 버스 편이었다. 하지만 이틀 전에 내린 비로 인해서 도로가 미끄럽게 변해 있었고, 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일찍 도착한 마을에서 잠시 짐을 풀고, 마을 구경을 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성도가 있다는 곳을 찾아 나섰다.
조띠 거르띠 머거르라는 성도를 만났다.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믿은 형제이고, 다른 마을에서 전도를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에 이곳에 정착을 하고, 식당도 열었다.
처음에 4명이 시작한 쁘러성사 교회는 6개월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45명 정도로 부흥해 있었다. 082-90753, 9847938748
시골 교회에 가면 그들은 늘 외부사람을 반갑게 맞아 준다. 우리가 왔다는 소문이 났는지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한 청년이 믿는다는 집에 갔다. 아직 가족들은 믿음이 없었다. 그 청년은 불치의 병에 걸려서 병원에서도 포기를 한 상태였다. 정확한 병명도 알 수 없었지만 그를 위해 기도했다. 가끔씩 정신을 잃고, 손가락끝이 까맣게 죽어가는 청년을 보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음이 안타까웠다. 신유의 은사가 임하기를 늘 지방을 다니면서 기도하고 기도한다. 그의 이름은 비샬 거르띠(그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한다)
그리고는 이제 신앙 생활을 얼마 하지 않았다는 성도의 가정에 갔다. 마침 그 가정의 아들(선딥 타파 9751013323, 9844911834)이 방학 중이라 집에 와 있었다. 박다풀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매일 악몽을 꾸고 몸이 약해진다는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 카트만두에 돌아가서 선딥과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러쉬미 케시(9748531922)라는 교회 여성도의 인도로 교회에 방문을 했다. 한 눈에 봐도 그 열심이 대단한 여성이었다.
이제 이런 곳까지 차로 쉽게 접근이 가능해졌으니 교육을 하고 말씀을 전하러 오기가 한결 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 더 머물기를 바라는 그들이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서 다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들러보기로 했다.
다른 곳까지는 전기가 들어오는데 이곳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솔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2월 10일
7시 50분 출발 9시 정상도착 9시 30분 차프레따 -거이리가웅 건너옴
12시 10분 띨라하(버스가 지나가는 곳---12시에 버스 출발함) 13시 05출발
14시 17분 꼬뜨가웅-2번지도착 이곳에서 걸어서 내려감 (이곳에서 버스로 두시간 더 길이 있음) 꼬뜨가웅도착(16시 20분) 17:00 출발 마디쩌우르 지나감 18:00 정차후 다시 출발
18:40 리왕에 도착
아침에 성도의 가정에서 간단히 오믈렛을 먹고 출발을 했다(7시 50분). 버스가 간밤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가는 길에 보니 비가 내리면 버스가 다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샛길을 돌아서 산 정상을 올라야 했다. 9시나 되어서 정상에 도착을 했다. 다시 내리막 차프레따(9시 30분) 와 거리이가웅을 지나서 띨라하로 가는 길이다.
저 멀리 띨라하가 보인다. 사람들마다 이야기가 다 다르다. 차가 몇 대씩 있다는 사람과 차가 한대 밖에 없다는 사람, 11시 쯤에 있다는 사람 1, 2시까지 있다는 사람.
하여튼 전도도 하고, 중간에 잠시 쉬어가면서 열심히 걸었다. 결국에 12시 10분이 되어서 띨라하에 도착을 했고, 차는 10분전에 출발을 하고 말았다.
정보의 부재가 주는 손실이었다. 걸어서는 이제 리왕까지 하루 만에 도착할 수가 없다.
그래도 4시간 정도 열심히 걸어 왔는데…하지만 이미 떠나버린 버스 손 흔든다고 돌아올 것도 아니고, 밥이나 먹어야지.
밥을 먹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는 중에 버스 한대가 와서 선다. 그 버스는 꼬뜨가웅이라는 마을로 가는 차였다. 이 버스도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버스였다. 비록 리왕까지는 가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13시 5분에 출발. 버스비는 1인당 50루피였다.
14시 17분에 꼬뜨가웅-2번지에 도착을 했다. 이 언덕에서는 히말이 잘 보였다. 어제 니깔빠니를 넘어올 때도 히말이 잘 보였는데, 오늘은 더욱 잘 보이는 날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2시간 정도를 더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리왕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서 열심히 따라 걸었다. 조금 더 가면 짚차가 들어오기도 한단다.
그 길을 따라서 도착한 마을에 방금 도착한 짚차가 한대 서 있었다. 오후 4시 20분 도착. 차는 5시가 되어서 출발을 하였다.
처음 오는 길이라서 과연 여기가 어딜까 고민을 하는 동안 전에 금란교회 청년들과 왔었던 마디쩌우르라는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디쩌우르를 중심으로 다시 더 북서쪽으로 가는 길도 있었다.
굉장히 많은 길들이 새롭게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이미 두 번이나 왔던 곳이라 낯이 익었다. 그리고 이미 머물렀던 마을은 늘 기대감과 함께 안도감을 주게 된다.
이미 자 보았던 숙소들 말고 이번에는 바로 버스팍에 새롭게 연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렇게 좋은 시설은 아니지만 하루밤 깨끗한 방에서 잘 수 있는 것만으로 좋은 일이다.
2월 11일(토)
7시 35분 출발 9:11 수디쩌우르도착 풀리방 가는 차 11:05출 13시 10분 도착 돌아오다
토요일은 주일이지만 산을 넘어야 하는 입장에서 교회에 방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이동을 하기로 했다. 롤파에서 바로 산을 넘어서 바글룽 지역으로 가려고 했지만 동쪽으로 가는 길들이 험하고 몇 일전에 내린 눈으로 많은 길들이 막혔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인 아저씨가 해 주었다. 그래서 퓨탄으로 내려가는 길과 수디쩌우르라는 마을까지 가서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있었는데, 퓨탄쪽은 이미 가 본 길이라서 수디쩌우르라는 마을에서 바글룽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 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7시 35분에 출발을 해서 수디쩌우르에 9시 11분에 도착을 했다. 퓨탄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서 롤파의 리왕으로 가는 북쪽도로를 따라서 가다보면 만나는 마을이 수디쩌우르인데 그렇게 큰 마을은 아니지만 인근의 많은 마을들의 중심지이고, 새롭게 길이 열린 곳들의 중심지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짚차들이 다니는 길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풀리방이라는 곳까지 더 북쪽으로 가서 산을 넘기로 결정을 했다. 11시 05분에 출발한 차는 1시 10분이 되어서 도착을 했다. 이제 막 만들기 시작한 길이기도 하고 험한 산길을 돌아가는 길이라서 아슬아슬한 구간들이 꽤 되었다. 풀리방에서 다시 한 시간 정도의 도로가 나 있기는 했지만 정기적으로 차가 다니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상황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우울한 소식이지만 산들이 모두 눈으로 인해 길이 막혔다는 것이었다. 멀리 눈들이 덮인 산들이 모였다. 그렇게 높지는 않은 산들이지만 몇 일전에 내린 눈이 양이 많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라서 길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럴 때는 고집을 피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냥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다음날 이동을 위해서 아쉽지만 다시 길을 돌아서 내려온다. 혹시 추울까 싶어서 머노즈에게 수디쩌우르에서 거금으로 외투까지 하나 사 주었는데 소용없게 되었다.
계란을 사서 삶아 놓고,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수디쩌우르에서 퓨탄의 컬렁가까지 보려고 한다.
2월 12일
오전 7시가 되어서 숙소(니끼따호텔-학교인근)에서 나왔다. 원래 가려고 했던 길들이 막혀서 결국은 퓨탄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바글룽쪽으로 이동해 보려고 루트를 잡았다. 퓨탄까지 차로 이동할까도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지 않고 산 하나만 넘으면 된다는 정보에 따라서 강을 넘어서 산을 넘어가기로 결정을 했다.
강을 다리를 통해서 넘자마자 수디쩌우르에 있는 교회 성도를 만났다. 역시나 도로가 생기고 마을이 형성된 곳들에는 교회가 세워져 감을 알 수 있었다. 이쪽 길로도 이미 많은 전도팀들이 지나다닌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이 헛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에 나의 한걸음 한걸음에도 힘을 내어 보게 된다.
아직 다리가 생기지 않아서 건기 때만 다닐 수 있는 길이지만 이곳에도 길이 나고 있었다. 롤파지역에서 퓨탄쪽으로 길을 내고 있었는데 중간에 일부분이 아직 연결하기에는 너무 험다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곧 길이 날 것 같았다.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샛길을 걷다 보면 그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역시 이런 곳은 갑자기 고도가 높아지고 경사가 급해서 길을 가기가 쉽지가 않다.
12시 30분 데우랄리라는 곳까지(이곳이 두 질라의 경계선이다) 중간에 밥도 못 먹고 열심히 걸었다. 중간 중간 어제 삶아 놓았던 계란과 주스를 타서 마시면서 이동을 했다. 중간에 벨바스라는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고, 계곡을 마주보고 마을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기도 했다. 이런 구석 구석까지 수백채의 가구를 가진 마을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서 이런 곳이 좋은 전도지역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데우랄리에 도착해서는 바람이 많이 부는 가운데에도 짜우짜우를 끓여 먹었따. 늘 그렇듯이 중간에 비스켓이나 사 먹을 정도의 가게말고는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높은 곳에서 수도를 연결해서 물이 잘 나오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산이나 지하를 통해서 물을 사용해버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네팔의 강은 말라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산간의 마을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중간 중간에 어떻게 연걸했을까 싶을 정도로 수도관들을 연결해 놓은 곳들을 보면서 사람이 물이 없이는 살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물라나 일부 지역을 갔을 때 물 때문에 고생을 했던 때가 더 떠올랐다. 똑 같은 산이라도 방향이 어디냐에 따라서 물이 있고 없고가 차이가 많이 난다. 간혹은 몇 시간을 걸어도 물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물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곤란을 겪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을이 형성된 곳들은 물이 있다는 뜻이고, 산물이나 수도로 물을 구하지 못해서 정 급하면 인가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다.
이제 부지런히 산을 내려가면 퓨탄에 도착을 하게 될 것이다. 길이 어디까지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길이 나있어서 짚차라도 다니면 조금 빨리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길을 나선다. 주무리깡다라는 마을까지 3시 40분에 도착을 했다. 물론 조금 더 위까지 길이 나 있었지만 차는 아예 다니지를 않았다. 주무리깡다라는 곳에는 신기하게도 오토바이로 퓨탄바자르까지 이동을 해 준다고 했다. 물론 그런 곳이 다른 곳에도 있을지 모르지만 네팔을 다니면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걸으면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두고 200루피를 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그냥 걷기로 했다. 여기 사람들은 도통 장사를 할 생각이 없다. 호객 행위가 없어서 편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이 사람들이 정말 장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덕분에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도지와 풍선을 나눌 수 있었다.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이미 와 본 곳이라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강가를 두고 넓은 땅이 있는데 왜 굳이 컬렁가가 산에 위치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어울리게 지금은 퓨탄의 버스정류자, 짚차들이 출발하는 곳들이 바그둘라라는 곳에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대충 숙소를 정했다. 요즘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숙소를 그냥 잡는 경향이 있다. 아무곳에서나 잘 자기 때문이다. 소바호텔이라는 곳에 여장을 풀고, 주점부리를 사러 시장을 돌았다. 오랜만에 포도도 사고, 콜라 한잔을 하기 위해서 모모집에 들러서 모모도 한 접시 했다. 비록 허름한 집이었지만 생각보다 맛은 좋았다.
2월 13일(월)
이 날은 도로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굴미쪽보다는 북동쪽의 바글룽쪽으로 이동을 하려고 차를 알아보았다. 알아보니 바그둘라가는 곳에서 퓨탄구석구석까지 가는 짚들이 다닌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곳까지 약 1시간을 걸어서 도착을 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길에서 가장 이상적은 곳이 어르카라는 마을이었다. 오후 3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한다는 것이었다. 지도를 보니 하루 종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같아 보였다. 그래서 이 때까지 힘들게 이동을 했는데 오늘은 조금 휴식을 하자는 의미에서 3시 30분 차를 기다리면서 인근의 호텔의 방을 하나 잡았다. 그리고는 누워서 성경도 보고, 영화도 하나 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3시 30분 차지만 그래도 조금 일찍 가서 차 안쪽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차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10분 후에 차에 도착했더니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확보를 한 상태라서 결국 오늘도 짚차의 위에 타기로 결정을 했다. 그 전에 이미 오토바이로 와 본 길은 20분 정도만 겹치고 그 후에는 북쪽으로 계속 이동을 했다. 어르카까지는 이제 막 길을 내기 시작해서 위험해 보이는 절벽도 많고, 비가 오면 도저히 운전이 되지 않을 곳들도 많아 보였다. 그런데 이 어르카지역에서부터 다시 길을 내어서 바글룽의 부르띠방이라는 마을까지 연결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 두 시간이면 도착하겠지 했던 마을은 중간에 간식시간까지 합쳐서 3시간이 걸렸고. 그곳에서도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지만 조그만 호텔이 있는 마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마을사람들이 같이 동행을 해서 호텔을 쉽게 구할 수 있었디. 저녁을 시켜 놓고 짐을 푸는데 마을의 청년들이 몇 명 놀러왔다.
그래서 이어진 긴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 마을의 공산주의자도 함께 참여를 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직도 조금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오이스트와 같이 기독교에 대해서 이런 산골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그들은 이 마을에 기독교인이 하나도 없으니 와서 전도를 하라고 한다. 이렇게 큰 마을인데 아직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희어져 추수를 기다리는 그들을 만나게 되어서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비록 10시가 훨씬 넘어서 그들이 떠나고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가져온 코코아도 나누어 먹고, 햄찌개도 같이 먹으면서 이곳에서 복음을 함께 나누어 먹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했다.
2월 14일(화)
7시 30분 출발 9시 20분 계곡에서 코코아와 간식 10시 50분에 정상도착
13시 10분 산에서 길 헤메다가 마을 만나고는 짜우짜우로 점심
마지막 내리막 마을 16시 50분도착 1시간 정도 내리막 후에 평지도로길 부르띠방도착
오늘은 부르띠방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7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두 세개의 길이 있다고 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찾으면 어려워진다고 해서 조심 조심 길을 나서는데 중간에 다음 마을까지 가는 아저씨를 만나서 조금 수월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서 마지막 급경사로 접어들기전에 계곡에서 코코아와 비스켓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 후에 산을 오르면서 중간 중간 길이 사라져서 산길을 오르는데 힘이 겨웠다. 이런 길에서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중간 중간 길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동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어르카에서 출발해서 3시간이 넘어서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의 지형들은 특별히 가파른 산들이 많아서 조금만 길을 잘못 들면 위험하거나 길을 완전히 잃어서 절벽 쪽으로 갈 수가 있었다.
왜 이쪽 산을 넘어야했을까 저 아랫쪽 산이 더 쉬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산맥이 달라서 조금 더 북쪽의 산을 넘어야만 했다.
내려올때도 이제 곧 부르띠방에 도착하겠지 했지만 산등선을 계속 타고 내려가야 하고, 급 내리막을 내려가야 하고 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저 멀리 부르띠방에서 베니쪽으로 가려고 하는 산이 보인다. 산 위에 눈이 쌓여 있는 듯하다. 결국 머노즈와 내려오는 길에 부르띠방에 도착을 하면 바글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이동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제 집으로 가려고 하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간에 산등선을 끼고 길을 내려가야 했지만 이정표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내리막길을 선택한 것이 잘 못되어서 1시간 이상 더 시간이 걸린 것 같고, 중요한 것은 중간에 다시 산을 넘기 위해서 없는 길을 억지로 찾아낸다고 고생을 해서 힘이 많이 들었다. 역시 오늘은 동행인이 있다는 것의 최대장점을 누리는 날이었다. 비록 초행길이고 산길을 헤집고 다니지만 혼자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해서 전도지와 전도풍선을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찾고 그 마을에서 급하게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그 경사가 심해서 무릎이 많이 아팠다. 그래도 곧 큰 마을에 도착한다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하는 일이다.
마지막 내리막을 내려와서 도로를 만났다. 이곳에서 어르카로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몇 주후에 베니까지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오토바이로 이동을 했는데 베니에서 부르띠방까지 도로가 거의 연결되는 중이었다. 부르띠방에서 몇 시간만 걸으면 짚차로 베니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난 후에도 정상에는 눈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그 당시에는 눈이 많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방을 잡고 빨리 밤이 되기 전에 버스 상황을 알아보았다. 놀라운 것은 부르띠방이라는 곳에서 바글룽을 거쳐서 바로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포카라가 가깝고 문명이 빨리 들어온 지역이라서 달랐다. 시장도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많은 물건들이 있고, 놀랍게도 당구장이 있고, 다음날 먹어 본 음식점의 음식들도 제법 개발이 되어 있었다.
2월 15일
우리가 잔 숙소 바로 앞에 교회가 있었다. 문이 잠겨 있고, 버스 시간이 되어서 버스 정류소로 바로 갔다, 그런데 이를 어째. 다울라기리 도가 번다에 걸려있었다. 버스가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동안 주위를 서성였다. 결국 버스는 출발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번다가 몇 일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아침 일찍 베니쪽으로 걸어갈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면 다시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에 오늘은 포기를 하고 그 전날 잤던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는 짐을 다시 풀고 잠을 잤다. 오전은 그렇게 보내고 인근의 식당에서 맛난 음식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지만 모모와 짜우민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머노즈는 방으로 가고 나는 냄새가 나는 옷들을 가지고 물가로 나섰다. 귀에는 성경공부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빨래를 했다. 이렇게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집으로 빨리 가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천천히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지방을 다니기는 힘들어진다. 오랜만에 빨래를 하고, 다시 잠을 청하고 다음날을 기대한다.
2월 16일
부르띠방 8시 30분 출발 17:00 리디 도착 부뚜왈 20시 정도도착 21시 카트만두 가는 버스로 카트만두로 이동 다음날 새벽 7시쯤에 도착
그 전날 혹시 모른다면서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표를 돌려받아 두길 잘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번다는 오늘도 연장이다. 다행히 부뚜왈로 가는 버스가 출발을 한단다. 물론 다우랄기리 도를 지나지만 중간을 가로지르지 않고 바로 남쪽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버스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바글룽을 지나가는 길을 가보지 못해서 결국 바그룽에서 이쪽 길은 나중에 오토바이로 정탐을 했다.
발파에서 굴미컬렁가로 가는 길에 경계가 되는 강가 마을 리디까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중에 길이 완전히 완성되지 않아서 절벽을 따라서 걸어야 했다. 그리고는 이 전에 와 본 길들을 따라서 이동.
부뚜왈에 도착해서는 세꾸와와 모모를 먹고 차를 기다린다. 이제 머노즈와도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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