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장 31-34절
동상이몽
한 침대에 있으나 다른 꿈을 꾸다.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하면서 살 수는 없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의 어느 순간에는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사건을 만나면서 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서도 그 사건을 함께 기억하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사건을 경험했다고 해서 꼭 감정까지 비슷하거나 그 후의 행동들이 비슷하지 않을 수 있다.
유월절 마지막날에 떡과 포도주를 먹으면서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모였다.
그 시간의 그 사건의 중요성을 당시에는 다 알수 없었겠지만 하여튼 그들은 한 장소에 모여 있다.
그런데 아주 다른 생각이 이 장소에서 벌어진다.
극단적으로는 예수님의 생각과 사탄의 생각이 극명하게 나뉜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을 팔 생각인 유다,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는 제자들, 목숨까지 내어 놓겠다는 베드로
이 장면에서
특별히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가 눈을 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장소에 사탄이 어슬렁거린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아주 밀까부르듯 끝장을 내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 놓는다.
제자들이 따르던 예수, 그만 끝장내면 제자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반을 아셨다. 그래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유혹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아셨다. 그래서 너는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라고 말씀 하신다.
베드로는 어떤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믿음이 떨어질리가 없습니다. 부인이라도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주님과 옥에도 죽을 때까지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3년이나 모셨는데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십시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부인하고 만다.
예수님의 기도대로 다시 돌아와 형제들을 굳세게 한다.
시험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기도문에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 죽음의 잔을 마시셨다.
여기서 마음을 때린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제자들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실패 할 수는 없지만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낙담해 있는 이들을 굳세게 세워야 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다.
선교사라고(아니 모든 믿는 자에게) 시험이 없고 고난이 없을 수 있겠는가?
때때로 믿음이 떨어지고, 실패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 하고, 아직도 지쳐 쓰러진 누군라를 일으켜 세워햐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네팔의 믿음의 사람들보다 뭐 대단히 잘난 것도 없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그들의 어깨만 감싸 안고, 일으켜 세워 주기를 원하신다.
실패의 장소와 시간.
베드로에게 늘 새벽의 닭우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 자신을 다잡아 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실패의 시간이 없이는 고통 받는 시간이 없이는 누군가를 굳게 세우는 능력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실패도 은혜다.
같은 시간 다른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늘도 믿음의 걸음을 걷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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