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성경묵상

예수님 따라잡기2

지니와 유니 2017. 3. 25. 11:25

7 10~24

446장 주 음성 외에는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드러냄이 아닌 드림, 지식이 아닌 지혜, 외모가 아닌 공의

 

어제는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빠른 방법보다 바른 방법을, 오름보다 옳은 방향을, 더 많음 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을 선택하신 예수님의 길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길 소망해 봅니다.

 

1.     유대로 가지 않겠다던 예수님께서 명절에 은밀히 올라 가십니다.

때때로는 우리에게 은밀함이 필요합니다.

왜 은밀함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나의 드러냄이 아님 하나님께 드림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은밀하게 하라고 합니다.

4, 6, 18절에 동일한 구절이 있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도 은밀히 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단어가 있습니다. “나타내지 않고라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에서 3번 동일하게 나오는 구절이 또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구제를 하고 기도를 하고 금식을 했다고 합니다.

별로 보일 것도 없는 인간들은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나타내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제물이 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그들은 그들의 상을 받았다라고 말하십니다.

 

보여주기 위한 삶, 그런 걸 두고 쇼윈도인생이라고 합니다.

식당에 가면 밖에 음식들을 진열해 둡니다. 그것은 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보여주기 위한 모형을 뿐입니다. 그것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 모형을 보고 음식을 시켰는데, 음식이 사진이나 모형과 동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속았다라고 표현합니다.

혹시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갈 수록 속았다라는 말이 나오는 인생이라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드림이 될 수 있을까요?

 

은밀함이란 비밀스럽고 숨어서 부끄러워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은밀함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근하게입니다.

은근이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생각하는 정이 깊음.

정취, , 수리 따위가 그윽함. 태도나 표정이 겸손하고 정중함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품격이 느껴지는 단어입니까?

18:20에서는 예수님께서 은밀하게 말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부끄러워서 숨어서 가신 것이 아닙니다. 불빛이 창을 너머 가듯, 소금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음식의 맛을 내듯 그 영향력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것은 정말 영광을 받아야 할 주체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은밀함의 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18절에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라고 말하십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인도 하나님이시면서 자신은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삶이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니 모두 놀라와 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이것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글을 아느냐는 의미가 아닌, 그의 놀라운 지혜를 보고 놀란 것입니다.

지식(123)과 지혜(434)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전 8:1에서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지식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사용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예수님의 지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의 말씀의 권능과 지혜에 놀랐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면 모세오경을 수도 없이 보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면 달달 외웠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참 본질을 찾아 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랐던 것입니다.

 

잠언 9 9절에는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라고 말하십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의롭지 않은 자에게 지식만 가르치면 세상은 점점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보면 사기를 치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입니다. 똑똑하지만 의롭지 않은 것, 그것은 재앙입니다. 지식은 많지만 지혜롭지 않은 것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생에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역자를 뽑을 때도 지식 있는 사람이 아닌 지혜로운 사람, 조금 똑똑한 사람이 아닌 의로운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혜는 없고 지식만 있었기에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이 걸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꺼릴 것이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도 할례를 받는 이유도 아시는 지혜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본질을 아셨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자를 고칠 수 있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절히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매 순간 매 순간 지혜를 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 14: 20에서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라고 말하십니다.

지식은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그 지식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라

사람들은 누군가를 판단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판단이라는 것이 늘 연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2016년도에 영국에서 전세계의 16000종류의 와인을 가지고 와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랍도록 7000원짜리 와인이 1등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상표, 원산지, 다른 사람들의 평가 등에 속는 거죠. 우리의 눈이 참 부정확하다는 것은 수 많은 테스트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외모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강해 보이면 그 앞에서 약하고, 자신보다 약해 보이면 강한 척을 합니다.

세상에서는 정말 강한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겸손한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상대가 강하던 약하던 상관없이 늘 겸손하고 섬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바로 겸손의 왕이라는 표현입니다. 또한 섬김의 왕이십니다.

왕이라는 단어와 겸손, 섬김이라는 단어는 어울리기가 힘듭니다. 앞 뒤가 맞기 힘든 조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사셨습니다.

왕이시지만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셨습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왜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하여 나를 드러내고 싶고, 남을 섬기기 보다는 이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외모를 보고 판단했습니다. 종들이나 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십니다. 옷 한 벌에 가난한 집안에, 과부의 아들에 못 배운 목수인 예수를 아무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렛의 예수. 나사렛예수는 존경의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에 차고 넘치는 예수라는 사람들 가운데 시골출신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면접을 보면 수도 없이 직장에서 불합격을 하고, 선을 보면 수도 없이 퇴짜를 맞으셨을 것입니다. 왜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력, 얼굴, 가족사, 그가 가진 물질 등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의의 판단으로는 그 분께서는 왕이십니다.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외모로 무언가를 판단하기 시작할 때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 옵니다.

많은 이들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그 사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바랍니다. 그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아닌 명품백과 명품차를 원할 때 참 사랑을 얻을 수는 없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인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에 더 집착하면서 살아갑니까? 그 순간 망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고, 지혜보다 지식에 열중하고, 외모로 판단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드릴 것이 별로 없는 삶이 될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의 길을 천천히 걸어가셨던 우리의 왕 예수님은 하나님을 드러나게 하며, 지식보다 지혜의 권능을 가지셨으며, 사람을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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