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장~21장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인 한 사람 때문에 발생한 일을 다루고 있다.
중요한 지역의 사람도 아니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의 일로 인해 베냐민이 몰살을 당할 뻔한 일이다.
이 때 중요한 단서 하나가 붙어 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그 때에...
사사기의 주제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이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에는 괜찮아 보이고 옳아 보여도 실제로는 옳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통찰력을 갖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에 참 필요한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면(아니 나 자신을 봐도) 어떻게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지 라는 순간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옳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문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제사장지파인 레위인인데 첩을 취하였다. 이 첩이 행음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집으로 도망을 간다.
그런데 굳이 첩을 또 찾으러 간다. 마음에 즐겁자고 몇 일이고 그 집에서 떠나지 못한다.
결국 늦은 오후에나 길을 떠났다가 남의 동네에 머물게 된다. 두 동네 중에 같은 민족인 베냐민족속의 마을로 들어간다.
그 동네의 불량배들에게 첩이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죽고 만다.
그 시체를 12조각 내어서 각 지파에 보낸다. 베냐민족속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결국 대대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한 날에 칼 드는 용사 2만 5천이 죽는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잘 못을 하기도 힘들 정도로 이어지는 잘 못된 선택들.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었다가 엄청난 결과를 나은 사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처음에만 중단 했으면 어쩌면 일어 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사소한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아서 나중에는 스스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일을 우리는 많이 발견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즐겁자고 하는 일은 어쩌면 잘 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첩을 얻은 것도, 행음을 한 것도, 몇 일이고 그 집에 머물렀던 것도, 베냐민지파가 성폭행을 한 것도 즐겁자고 한 일이다. 그런데 그 즐겁자고 한 일이 때로는 인생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된다.
선택의 순간마다 늘 올바른 선택을 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돌아가야 한다.
좋은 선택 하나 하나가 모여서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고, 나쁜 선택 하나 하나가 모여서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사소하지만 소중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 무명의 레위인과 달리 사도행전 16장의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선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믿어주고 세워주었던 바나나와 마가의 일로 나뉘어지게 되지만, 디모데후서를 보면 마가와도 다시 화해하고 함께 동역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선택에서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선택에서 나의 생각보다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때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 때 바울의 발길이 동으로 동으로 향했다면, 아시아가 지금의 유럽처럼 되고, 유럽이 지금의 아시아처럼 되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지만 이런 선택 선택 하나 하나가 모여 지금의 내가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의 내가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구는 동족을 멸망 가운데로 몰아가고, 누군가는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 어떤 선태고 사소하거나 소중하지 않는 선택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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