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여행과 글

유치원 가기 싫은 막내의 뒷 모습을 보면서

지니와 유니 2019. 8. 20. 15:17

아침마다 유치원 가기 싫어하는 막내와 전쟁입니다.

마음으로는 저렇게 싫어하는데 오늘만 보내지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점점 유치원을 보내기 힘들게 것이고, 나중에 초등학교를 때도 힘들 것이기에 울고불고 난리인 막내를 유치원에 보냅니다.

시간만 참으면 되는데,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영어도 네팔어도 되지 않는 입장에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까 가엽기까지 합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요.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유명한 장면이 있습니다.

밀정으로 광복군 동지들을 배신했던 이정재(염석진 ) 옛동료들이 죽일 물어봅니다.

그랬냐고.

내가 독립이 알았냐고, 독립이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

(여기서 독립은 못된 표현이고, 광복이 맞는 말입니다. 독립은 나라에서 분리하는 것이고, 광복은 자신의 주권을 다시 찾는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아무도 미래를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의 고난이 얼마나 이어질지 수가 없습니다. 말은 5년만 10년만 참으면 된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확신할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도 3년만 지나면, 4년만 지나면 졸업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이 힘듭니다.

하지만 10개월만 지나면, 산고의 시간만 지나면 시간을 끝납니다.

힘들다는 군대도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힘들지만 기한이 있다는 것은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고난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경에서 존경하는 요셉, 그의 10년의 종살이 3년의 옥살이.

모세의 40년의 광야생활.

이스라엘의 40년의 광야생활

시간의 길이만으로도 힘들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었을까요?

끝났으니 년이라고 말하지만, 안에 있을 때는 끝이 보이기는 했을까요?

그들에게는 끝이 아마도 보이지 않았을수도 있습니다.

 

38년의 일제치하.

때의 우리 민족에게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가운데 누군가는 광복을 위해서 목숨을 겁니다.

결과론적으로 광복군과 친일파로 나누어서 삶을 평가하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현실은 미래가 보였을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이겨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전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대단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시간의 유치원에서의 시간이 힘들어 매일 울어대는 막내.

외국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이 때로는 힘겨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에 빠질 때가 있는 .

그런데, 성경을 , 우리의 역사를 희망 없었던 그들의 삶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자유롭고 평안한 것인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하면서 걸어야 같습니다.

 

끝이 보이는 고난에 있는 분들에게, 언젠가는 고난이 끝날테니 견디라고 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에 많은 것들이 기한을 없다는 .

 

그런데 깨닫는 가지 아름다운 시편의 이야기.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는 도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4절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푸른 풀밭이지만 인생의 수 많은 길에서 음침한 골짜기가 있기 마련이다.

얼마나 위험할지 얼마나 멀지 알 수도 없다. 과연 끝이나 있을지 확답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내 마음의 상태가 바뀐다.

 

아이들이 처음에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것은, 낯선 곳으로 가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하루 종일 함께 있어 준다면 상황이 바뀌지 않을까?

 

신학교 졸업식이나, 현지인 교회 방문을 마치고 올 때는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잠시 왔다가 가지만,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실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래서 주님이 바로 옆에 곤히 주무시는데도 제자들은 죽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물론 우리는 다 그렇게 산다. 그 상황에서 의연한 것보다 두려운 것이 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보면 늘 두렵고 걱정인 사람이 있다.

일어난 일에 두려운 경우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늘 미리 걱정하고 두려운 사람이 있다.

 

두려움과 무기력증에 있는 요즘의 삶을 돌아보면서, 막내에서 학교가서 재밌게 놀고 오라고 하는 부모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도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걱정과 두려움은 조금 내려 놓고, 조금은 즐겁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엄청난 어두움의 골짜기를 건너온 분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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