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여행과 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려웠을까?

지니와 유니 2020. 9. 17. 23:59

기억나지 않지만 두려웠을까?

 

태아는 숨을 쉬지 않는다, 철저히 엄마의 탯줄 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러다가 엄마의 뱃속을 떠나는 고통의 시간을 거친 후 처음으로 내쉬는 아주 특별한 첫 숨.

그 첫 숨을 터뜨리지 않으면 엉덩이를 세게 때린다. 인생의 첫 장으로는 가혹하다.

보통 인간이 어디까지 기억할까?

기억력이 부족한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 몇 일 전부터 까지가 최선을 다해서 기억을 끌어올린 최대치이다.

태어나는 순간에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려웠을까?

새로운 세상, 한번도 마셔보지 않은 공기라는 존재,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 달라진 환경.

 

태어나서 한번도 멈춘 적이 없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쉬던 숨이 잠시 멈추었다.

전신마취가 폐도 멈추게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받아야 하는 수술이 그런 식의 마취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수술 당일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몸에 있는 작은 돌 하나를 빼기 위해서 온 몸을 죽이는 작업.

 

나의 수 많은 기도 제목 중에 하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방식의 배를 가르는 대수술은 받지 않을 수 있기를, 또 하나가 입원실에 입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평생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왕이면 그 시기가 늦기 만을 바랬다. 그런데 전신마취라니, 그리고 입원이라니,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의와 간호사가 무슨 주사 몇 CC 주사하겠습니다.”라고 하던 이 후에 나는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수면 마취로 대장내시경과 위장내시경을 세 차례 정도 받아보아서 기억이 사라져 버림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

 

더 이상 나의 의지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려웠을까?

 

난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에 신을 찾았고,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다.

천국 가는 것은 즐겁지만, 죽음 앞에는 늘 두렵다.

그래서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최대의 기도제목이다.

남들보다 잘 참는다고 나름 자신하지만, 그 참음이 오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잘 죽는 것, 그건 복이다.

죽음은 두렵고, 슬픈 일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많이 아플 것이라는 신호이다.

20년을 선교지에 살아서, 몸이 비상신호들을 보내고 있다.

거의 오 년마다 한번씩 1~2주씩 정신 없이 아팠던 기억들, 2년전의 구안와사, 지금의 요로결석.

 

한 가지 반성은 확실히 했다.

아픈 사람들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대해야겠다는 것이다.

혼자 끙끙대면서 아파하는 그 밤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나의 깊이 없는 묵상은 늘 깊이 없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이런 일을 겪고도 대단한 것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숨쉬는 것이 은혜임을 다시 한번 누려본다.

수술을 받으면서 쪼그라든 폐를 다시 부풀리기 위해서 심호흡을 수도 없이 크게 하는 것처럼, 하루의 일상에서 잠시 밖을 내다보면서 심호흡 하는 여유가 있기를……

쪼그라든 폐 뿐만 아니라, 마음도 조금 커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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